“만약에 어머니가 없었으면 제가 멋있게 변화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제 옆에서 멘토를 해주었던 분이 어머니죠.“_ 모델 장윤주 int 중
요즘 20대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Wanna be’ 스타이자, 입는 옷마다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가장 ‘HOT’ 한 모델 장윤주. 런웨이 뿐만 아니라, 개그맨을 웃기는 모델로 인기를 끌며 대중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모델로서는 작은 키인 170cm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톱 모델이 되고, 당당한 자기표현과 뛰어난 예능 감으로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된 그녀! 하지만 화려하고 밝은 그녀의 뒷모습에는 마른 다리 콤플렉스를 갖고 있고, “너는 모델이 안돼”라는 말을 매일같이 들어야했으며, 신체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2년간 자신만의 워킹을 개발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모델을 포기하려던 순간, 또 스무 살 뒤늦은 방황으로 힘들었던 순간에, 그녀 곁에는 언제나 어머니 맹선재 여사(66세)가 있었다. 늘 앞선 생각으로 방향을 제시해주고, 냉정한 패션계에서 10년이 넘게 최고의 자리에 있게 해준 모델 장윤주의 어머니.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고요. 눈물도 많아요. 음 나는 여자예요. 걷기를 좋아하죠. 편한 차림으로 불편한 힐은 벗고 화장은 잘 안 해요. 평범한 여자예요. 그대 어깨 기대어 온종일 노래를 불러요. 그런 날 안아줘요. 이대로 난 좋아요.
2. 오래된 노래
작사 장윤주 작곡 장윤주 편곡 김정범
지나가는 바람이야 눈 뜨면 사라 질 거야 안녕 그대로 떠나가 다신 날 찾지 마 순간의 말장난이야 사랑은 원래 없었어. 잘 가 이대로 떠나가 제발 날 부르지 마. 흩어지는 기억들 꽃잎은 진다. 서둘러 너를 보낼게 이제 더 이상 아프기 싫어. 괜찮아 여기까진 걸. 어제는 사랑 오늘은 이별 지겨워 사랑의 노래 잠시 영원한 꿈을 꾸었네. 괜찮아 여기까진 걸
3. 아침이 오면 Part 1
내게서 떠나 가 주오. 아침이 오면 나는 그대를 기다리겠소. 햇살 눈부신 그대를 보며 꿈을 꾸겠소. 그대. 슬픈 눈 감겨 주는 잠아. 잠시 내 맘을 쉬게 하렴 아침이 오면 그대 품에서 나 노래하리. 시린 겨울도 그 마음만으로 따뜻했던 우리 그때 약속 잊지 마 우리 그때 꿈을 기억해.
4. 아침이 오면 Part 2
5. 힐링
작사 장윤주 작곡 장윤주
어둠에서 깨진 숨기려 해봐도 계속 드러나네. 좋아질 거라고 그대는 말하네. 분명 방 안에는 혼자 있었지만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죠. 어디에 있나요? 내가 보이나요? 나를 안아줘요. 당신이 필요해요. 좋아질 거라고 그대는 말하네. 분명 방 안에는 혼자 있었지만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죠.
6. 가을바람
작사 장윤주 작곡 장윤주 편곡 김정범
가을바람이 분다. 이리저리 그네 타던 그 소녀는 사라지고 코스모스 꽃 흔들려 휘청 휘청 내 치맛자락도 춤춘다. 살랑 살랑 어디서부터 시작 됐는지 그대 알고 있나요? 노을 진 하늘 그댈 닮았죠. 나와 함께 갈래요?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대 내 손을 잡아요. 지난여름 밤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죠. 우리의 눈빛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죠. 그대를 원해요.
7. I’m Fine
작사 장윤주 작곡 장윤주 편곡 김정범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고요. 눈물도 많아요. 음 나는 여자예요. 걷기를 좋아하죠. 편한 차림으로 불편한 힐은 벗고 화장은 잘 안 해요. 평범한 여자예요. 그대 어깨 기대어 온종일 노래를 불러요. 그런 날 안아줘요. 이대로 난 좋아요.
8. 불안
9. 더 오래된 노래
10. The Field
작사 장윤주 작곡 장윤주 편곡 김정범
깊고 푸른 바다처럼 넓고 크게 나는 자유롭고 싶어. 저 찬란하고 투명하게 빛난 햇살 다시 시작되는 아침 스쳐간 바람이 나를 부르네. 꽃향기 속으로 미소를 짓네. 어깨 위를 감싸줄 뜨거운 태양 지난 상처는 모두 다 사라질 테니 저 어둡던 길을 따라 눈물짓던 아픈 날들아 이제 나는 너를 몰라 후후 또 다른 나를 찾아 떠나가리.
힐을 벗는다. 화장을 지운다. 깨끗하게 얼굴을 씻는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들긴다. 뚱땅뚱땅. 의미없는 소리들. 하지만 가끔은 좋은 멜로디가 나올 때도 있다. 그 멜로디에 조금씩 살을 붙여 본다. 하루, 한 달, 일 년. 조금씩 곡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4년. 장윤주가 첫 앨범 <Dream>을 만들고 다시 <I’m fine>을 만든 시간.
<Dream>과 <I’m fine>사이, 장윤주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했고, MBC <무릎팍도사>에서 패션모델을 대표하는 인물로 초대됐다. 매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1년 중 몇 달은 온스타일 <도전 슈퍼모델코리아>의 MC로 온전히 시간을 보내야했다. 앨범을 내려고 마음먹고 곡을 만들 여유는 없었다. 시간 나는대로 가사를 쓰고, 피아노를 치며 조금씩 곡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보니 <I’m fine>에는 ‘오래된 노래’처럼 <Dream>을 발표할 때 쯤 만든 정말 오래된 노래도 있고, ‘Field’처럼 앨범 작업 마지막에야 싣게 된 것도 있다. 어떤 노래에서의 장윤주는 이별의 괴로움에 허우적거리고, 어떤 노래에서는새로운 시작을 다짐한다. 장윤주의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던 시간. 하지만 그 때도 장윤주는 기쁘고, 슬프고, 웃고, 울었다. 그래서, ‘I’m fine’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평범하다 노래한다.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구요. 눈물도 많아요. 나는 여자에요.’
모든 노래의 작사와 작곡을 했고, 작곡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악기인 피아노로 했다. <Dream>을 만들 때는 기타를 사운드의 중심에 놓겠다는 구상도 해보고, | 기술적으로 더 좋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처음 만들었던 것과 다르게 멜로디를 바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I’m fine>은 의도적인 계획이나 구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이 쌓이는 것 만큼 곡을 만들었고, 가장 편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녹음도 널찍한 스튜디오에 모든 연주자들이 모여 합주를 하면서 진행했다. 세공하듯 정밀하게 깎아내고 다듬은 소리는 없다. 대신 피아노를 치고 노래하는 장윤주가 그 순간 뽑아낸 라이브같은 감정이, 그 소리들을 품는 널찍한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여유로움이 담겼다.
많은 사람들이 더 화려하게 변신하는 메이크오버(make over)를 꿈꿀 때, 그녀는 마치 리무버로 화장을 지우듯 가장 사적인 감정과 개인적인 취향으로 <I’m fine>을 만들어나갔다. 앨범의 프로듀서인 푸디토리움의 김정범은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됐고, 합주를 할 수 있는 넓은 스튜디오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기타리스트 이병우의 소개로 구할 수 있었다.
일을 하고, 음악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음악을 만들었다. 그렇게 삶의 기록들은 음악으로 남고,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간 사이에는 한 여자가 조금씩 더 성숙한 마음을 갖게 된다. ‘오래된 노래’에서 헤어진 연인을 향해 ‘이대로 떠나가’라며 슬퍼하던 여성은 ‘Healing’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은 뒤 ‘The field’에서 힘찬 사운드 속에서 ‘그대를 찾아 떠나가리’라고 노래한다.
<Dream>이 장윤주 스스로 소녀에 가까운 감성으로 만들었다면, <I’m fine>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사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복잡한 맛을 느끼게 된 어른 여성처럼 느껴진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자신이 만든 멜로디에 가장 어울리는 느낌을 찾은 장윤주의 목소리는 그 성숙의 일면일 것이다. 몇 몇 곡은 절친한 보컬리스트 나얼에게 디렉팅을 부탁하기도 하면서, 장윤주는 자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았다.
4년 동안 장윤주는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4년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조금씩 곡을 만들어나가던 한 개인으로서의 장윤주는 더 속 깊은 어른이자 좋은 뮤지션이 됐다. 4년 전의 장윤주는 <Dream>에서 자신이 좋은 싱어송라이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4년 후, 장윤주는 <I’m fine>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앨범 한 장의 호흡 안에 일관된 스타일과 분위기로 전달하는 뮤지션이 됐다. 수많은 가수들이 더 유명해지기 위해 듣는 사람만을 위한 짧은 노래들을 부를 때, 이 유명한 모델이자 방송인은 시간을 쌓아나가며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노래한다.
<I’m fine>은 평범한 여자가 가장 평범한 방법으로 만든 특별한 음악이다.
[ 4 Years, 10 track ]
1. I’m Fine (Ver. Piano) 장윤주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다.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구요. 눈물도 많아요. 나는 여자에요’. 피아노와 휘파람이 전부인 연주, 자신이 얼마나 빤한 여자인지 털어놓는 가사. 마치 런웨이에서 내려와 힐을 벗고, 화장을 지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부른 것 같은 노래. 가장 편한 악기인 피아노와 함께한 ‘I’m fine’을 시작으로 장윤주는 ‘평범한 여자’로서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2. 오래된 노래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던 ‘I’m fine’에 이어 ‘오래된 노래’에서 드럼, 베이스, 기타가 덧 붙은 4중주 연주로 진행된다. 다양한 소리와 보사노바 리듬이 덧붙어 곡을 다채롭게 끌고 가면서 장윤주의 이야기도 천천히 풀려 나간다. 이 앨범에 실린 노래 중 장윤주가 가장 처음 만들어서 ‘오래된 노래’이기도 하다. ‘지나간 사랑이야 눈 뜨면 사라질 거야’라며 이별을 노래하는 장윤주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다. 그러나 보사노바 리듬은 갈수록 조금씩 빨라지고, 후반의 기타 연주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나직한 목소리에 담긴 장윤주의 슬픔이 서서히 앞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곡. 싱글로 듣기 보다는 앨범 전체의 흐름 속에서 들어보기를 권한다.
3. 아침이 오면 Part I ‘아침이 오면 그대 품에서 노래하리’. 사랑하는 이와의 재회를 기다리는 장윤주의 목소리는 최대한 절제되고, 그녀가 쓴 가사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에 기댄 자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아침이 오면’은 재회의 희망 대신 포기와 체념으로 가는 괴로움의 기록이다. 담담하게 반복되는 멜로디 속에서 사운드의 스케일은 점점 더 커지고, 격렬해지는 연주는 곡을 더욱 깊은 우울 속으로 데려간다. 사람들 앞에서는 담담하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처럼, ‘아침이 오면’은 장윤주의 조용한 노래 뒤에 있는 복잡한 마음을 펼쳐 놓는다.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에 담긴 마음을 세밀하게 집어내는 편곡. 1집부터 시작된 장윤주의 음악이 어떤 스타일로 완성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곡.
4. 아침이 오면 Part II ‘Part I’에서 표현된 장윤주의 슬픔은 ‘Part II’를 통해 극단으로 치닫는다. 록이라 해도 좋을 만큼 앨범 전체에서 가장 격렬한 연주가 진행되고, 그 속에서 담담하게 ‘기억해 우리 잊지마’를 반복하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헤어진 누군가에게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게 됐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마치 앨범의 1막을 끝내는 듯한 노래.
5. Healing ‘아침이 오면’에서 파국으로 치달았던 감정은 ‘Healing’을 통해 조금씩 치유된다. 장윤주는 ‘I’m fine’처럼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며 차분히 감정을 추스른다.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죠’라는 가사처럼 헤어진 이와의 기억은 과거형이 됐고, 목소리는 더욱 담담해졌다. 나얼이 보컬 디렉팅을 맡은 ‘아침이 오면’과 달리 보다 저음이 섞인 장윤주의 목소리는 더 내밀한 독백처럼 느껴진다. 이 앨범에서도 가장 아무 것도 꾸미지 않은 것 같은 장윤주의 목소리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6. 가을바람
‘아침이 오면’에 이어 ‘가을 바람’ 역시 나얼이 디렉팅했다. 나얼에 의해 조금 더 가볍고 여성적으로 변한 장윤주의 목소리와 함께 ‘가을 바람’은 가벼운 리듬으로 앨범의 분위기를 끌어 올린다. ‘I’m fine’부터 ‘Healing’이 이별부터 체념까지의 과정이었다면 ‘가을바람’에서는 그 모든 괴로운 기억들이 추억이 된다. 멜로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밝고 가벼운 느낌으로 곡을 바꿔 나가는 김정범의 편곡이 인상적이다.
7. I’m fine 피아노로만 연주한 1번 트랙과 달리 김정범의 편곡이 더해져 보사노바에 가까운 스타일로 변했다. 장윤주의 목소리와 피아노로만 진행된 1번 트랙이 이별을 맞이한 여성의 우울함을 드러냈다면, ‘Healing’과 ‘가을바람’을 지나 한결 가벼워진 연주로 진행되는 ‘I’m fine’은 조심스럽게 다시 세상에 발을 딛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같은 가사라도 1번 트랙과 이 노래의 ‘이대로 나 좋아요’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사하게 색깔을 더하는 ‘I’m fine’의 뮤직비디오처럼, 한 여성의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는 어떤 순간이 펼쳐진다.
8. 불안 ‘가을 바람’과 ‘I’m fine’이 앨범의 2막을 담당한다면, ‘불안’은 3막의 시작과도 같다. 앞의 두 곡에서 살짝 밝아진 감정은 다시 장윤주의 피아노 독주로 어두운 분위기로 변한다. 싱글로 듣는다면 짧은 소품이지만, 앨범 전체로 들을 때는 이별과 체념의 과정을 모두 겪은 여자가 혼자 쓸쓸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의 일부가 된다. 이 앨범이 결국 장윤주 개인의 지난 시간동안 쌓이고 변해온 마음의 기록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곡.
9. 더 오래된 노래 ‘오래된 노래’를 피아노 연주로 바꾼 곡. 장윤주는 원래 피아노로 작곡을 하는 만큼 가사를 붙인 ‘오래된 노래’보다 먼저 만든 ‘더 오래된 노래’인 셈이다. 마치 데모 녹음한 것을 쓴 것처럼 녹음 중 들어간 잡음까지 그대로 담았는데,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녹음이라 할 수 없지만 장윤주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앨범 전체의 정서와는 어울린다. 복잡했던 감정들을 정리하고, 다시 ‘불안’을 넘어 다시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만드는 장윤주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결국 그 과정이 이 앨범의 이야기 아닐까.
10. The Field 장윤주가 앞의 아홉 곡에서 점점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다면, ‘The field’는 제목 그대로 다시 세상에 나아가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사운드는 앨범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나얼이 디렉팅한 장윤주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볍게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바깥에서 눈물짓던 아픈 날 들’을 뒤로 하고 ‘또다른 나를 찾아 떠나가리’라고 노래한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던 여성은 ‘The field’를 통해 바깥으로 나오고, 장윤주는 ‘The field’를 통해 보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음악들을 시도한다. 한 여성으로도, 뮤지션으로도 장윤주가 보다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 내딛는 곡. 또한 이 앨범의 모든 곡은 국내에서 가장 넓은 스튜디오라 할 수 있는 성신여대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는데, 특히 큰 스케일의 사운드를 들려주는 ‘The field’는 녹음장소가 만들어낸 넓은 공간감을 확실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깡마른 체구의 조그마한 동양의 소녀가 세계를 호령하는 톱 모델이 되기까지. 그리고 패션과 방송, 음악을 넘나드는 만능 엔터테이너로 성장하기까지. 장윤주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의 자리에 섰다.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그러면서도 우리 곁에 소탈한 친구로 다가온 장윤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장윤주 입니다.
스타칼럼을 통해 제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모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장윤주의 진솔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소녀, 모델을 꿈꾸다
제가 처음 모델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선생님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마르고 허약해서 늘 길고 가느다란 바늘, 실 등으로 놀림을 받았어요. 그렇게 집에 온 날은 속상해 하며 엎드려 울곤 했었죠.
중학교 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교복치마 아래로 보이는 다리를 보고 놀리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 저의 마른 다리를 보고 유일하게 칭찬해 줬던 분이 바로 수학선생님이셨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넌 다리도 길고 참 예쁘구나. 얼굴도 작고 동양적으로 생긴 게 나중에 커서 모델하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부터 제 별명은 ‘모델’이 됐고. 1년 사이에 키가 무려 10cm가 자랐어요. 처음엔 관심도 없고 생소했던 그 별명이 지금의 장윤주를 만든 시작이었습니다.
제겐 두 명의 언니가 있습니다. 지금은 피아노 선생님을 하고 있는 큰 언니에겐 음악을, 둘째 언니에겐 패션과 미술을 배우게 됐습니다. 특히 꾸미기를 좋아하는 둘째 언니의 방에는 늘 잡지책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일본 잡지를 보게 되면서 모델을 만나게 됐어요. 점점 더 ‘모델’이라는 별명은 제게 꿈이 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는 모델이 되고자 하는 절 반대하셨어요. 어머니를 1년간 조르고 설득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신사동의 작은 차밍스쿨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날 차밍스쿨 원장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자장면을 사주셨어요. 아직까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엄마의 빨간 재킷을 입고. 12살 소녀 윤주.
소녀의 좌절, 그리고 도전
항상 방과 후면 모델학원에 갔습니다. 모델이 된다는 것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세를 교정 받기 위해 3달간 발레 슈즈만 신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시작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하이힐을 신고 연습하고 있을 때 저는 키도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계속 발레 슈즈를 신어야만 했습니다.
처음으로 하이힐을 신고 걷는 연습을 했던 때. 비틀 비틀 누구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다른 친구들 보다 더디기만 했던 연습생 시절, 모두들 오디션에 붙어 프로 모델들과 무대에 설 때에도 저는 구경만 하던 소녀였습니다. 그 당시 172cm이었던 저는 높은 천장만 보면 점프를 해 키가 크기를 소망했으나 더 이상 자라지 않았습니다. 무대에 설 수 없었던 저는 집 앞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무대 삼아 혼자 음악을 들으며 걷곤 했습니다.
그렇게 학원에 들어간 지 2년이 될 무렵, 모델은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과 고민으로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엄마는 그런 제가 안타까웠는지 운동을 체계적으로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하셨고, 헬스 PT와 수영 강좌를 듣게 됐습니다. 그리고 운동만큼 열심히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국내외 패션잡지를 읽고 또 보는 것이었어요. 그렇게 패션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올림픽 공원에서.
운동에 전념하다 보니 어느 샌가 없던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넌 모델이 될 수 없어. 부족해’라고만 하던 원장 선생님의 말씀은 더 이상 절 좌절시키지 않았어요. 하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97년 서울 컬렉션 오디션에서 당당히 진태옥 박윤수 한혜자 선생님의 뮤즈가 됐고 오프닝과 피날레를 장식하며 누구보다 멋지게 첫 데뷔 쇼를 치렀습니다.
단점으로 지적받던 저의 작고 동양적인 매력이 오히려 크게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 당시 세계 패션계는 저와 같은 작고 여린 소녀 모델들이 인기였고 오리엔탈리즘 열풍이 불었습니다. 나와는 정 반대로 흘러갔었던 시대의 흐름이 행운처럼 나를 향해 왔던 것이지요.
컬렉션 이후 오브제 강진영 선생님의 카탈로그를 비롯해 스톰 쥬크 ENC 국내 패션 광고를 섭렵했습니다. 저의 첫 패션 화보는 보그 코리아가 됐어요. 지금은 더블유 매거진에 계시는 이혜주 편집장님이 보그 코리아의 수석 에디터로 있을 당시였습니다. 이혜주 편집장님과 1대 패션 사진작가 정용선 작가에 의해 제 얼굴을 세계 패션계에 알리게 됐습니다.
가장 아끼는 한 컷. 아마 이 컷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이 사진으로 98년 뉴욕으로 가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당시는 지금처럼 국내 패션 사업이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IMF라는 경제 위기에 학생신분으로 비자를 받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죠.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비자를 받고 홀로 뉴욕을 가게 됐는데요. 모든 것은 낯설고 에이전시와의 계약부터 일상생활도 힘들었습니다.
처음 저에게 러브콜을 보낸 세계적인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기로 한 그날도 시간 약속을 2시간이나 늦게 되는 실수를 저지르고 결정적으로 저의 뉴욕 에이전시 매니저의 욕심으로 그를 따라 이중 계약을 하게 되면서 미국에 간 지 3개월 만에 어렵게 받은 워킹비자가 취소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 저는 미국 땅에 당분간 들어가지도 못하게 됐고. 당시 한국 나이로 19살이던 저는 처음으로 모델일과 사람들에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내 맘같이 않구나.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때를 생각하면 이루지 못한 첫 사랑과 같은 아련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세계 패션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모델 장윤주라는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열정을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뉴욕에 처음 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지만 꿈으로 가득했던 19살의 나.
소녀, 그리고 쉼표
저는 잠시 모델 활동을 쉬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서울예대 영화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는 찍히는 사람이 아닌 찍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학교생활을 하면서 ‘나’라는 자아를 찾게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음악 역시 실용음악과 정원영 교수님의 수업을 청강하며, 그때 만난 친구에게 피아노를 1년간 배우는 등 진지하게 음악의 열정을 표현하는 시작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델 일도 다시 자신감을 찾게 되고 낮에는 학업과 모델 일을 밤에는 음악의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인도네시아 론복에서 티없이 맑은 동네 아이들이 촬영을 구경하고 있다.기본나라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아프리카였다. 1년간 머물 집을 알아보기도 했다. 아마도 사진작가 박지혁과 함께라 더 그랬던 것 같다. ‘모델과 사진작가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2003년 1월 케냐에서.
닥치는 대로 해외 출장을 다니며 자유로운 20대를 보냈습니다. 마치 집시처럼 살았다랄까요? 오늘은 아프리카 내일은 스페인 다음에는 파리, 인도 30여 개가 넘는 다양한 나라를 다니며 내 안의 꿈틀대는 감성과 끼를 마음껏 쏟아내며 살았습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20대를 지냈습니다.
2005년 친구들과 함께 냈던 여행 에세이 CmKm에서는 글과 저의 첫 싱글 앨범 ‘fly away’를 내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싸이월드 음원차트 재즈부분에서 1년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니까요. 곧이어 2006년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씨와 함께 낸 ‘스타일북’도 12만 부의 판매를 이루며 중국과 대만에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델 외에 작업과 표현을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더 구체적으로 하기로 하고요. ^^ 오늘은 모델 이야기를 더 할게요.
촬영할 땐 음악이 참 중요하다. 음악에 따라 본능적으로 그 감각을 따라간다.표현하기 위해, 나는 채워져야 한다.
소녀, 모델을 이야기하다
음… 저는 지금 모델 후배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모델이라는 직업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됐고 그들의 친구이자 선생님이 됐습니다.
저는 패션모델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모델은 표현하는 직업입니다. 그리고 의식주 중에 의를 뜻하는 ‘패션’은 시대의 흐름을 가장 빠르게 대면하는 문화입니다. 그 문화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전 수퍼 모델 코리아’에서 모델들을 인터뷰할 때 ‘톱 모델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세요?’라고 질문하면 “워킹 연습과 다이어트”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습니다. 대중들이 모델을 봤을 땐 가장 중요한 것이 몸매와 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떤 분야든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는 것만 보게 되니까요. 하지만 패션모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보통 사람들과는 생각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델은 감각적인 직업입니다. 순발력과 센스를 요구하는 순간의 마찰과도 같습니다. 반짝이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그 순간 작가와 모델은 마음이 통해야 해요. 디자이너는 모델을 보면서 영감을 얻고 그러기 위해 모델은 계속해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많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질문하고 잘 놀고 잘 먹고… 그래야 표현할 수 있는 것이죠.
내가 좋아하는 한 컷. 사이다의 사진은 건조한 감동이 있다.동양의 프리다 칼로. 멋진 누군가의 삶을 사진으로 남기는 일 또한 재미난 작업이다.
제 경우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모델 일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표현의 영감이 책과 영화 인테리어 일상생활의 작은 소품일 수 있듯 말이죠.
모델은 뮤즈이고 아티스트예요. 모델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모델은 멋있어야 하고 아름다워야 해요. 적어도 그 무대에서만큼은. 그러기 위해 건강하게 다져져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사랑하고 자신감이 필요한 것이죠. 짧고도 반짝이는 그 순간을 100% 내 것으로 만드는 사람만이 기억될 거예요.
모델을 비롯한 표현하는 직업들이 다 그렇지만 나만 할 수 있는 것. 나만의 컬러. 그 누구도 대체 할 수 없는 그 무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패션모델에 미쳐 있었습니다. 최고의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자부하며 모델의 길만 고집했었죠. 그런 제가 방송을 통해 대중들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고 지금은 음악과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목소리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뭘 하던 대중들에게 저는 모델 일거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모델로 활동했고 또 모델로 알려졌으니까요. 저는 ‘패션모델’로 데뷔 했지만 지금의 저는 ‘모델’ 장윤주가 돼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지난 포토폴리오를 한 곳에.
제가 생각하는 모델이란 이렇습니다. 진취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앞에서 끌어 주는 리더.
그야말로 모델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삶이 누군가의 모델일 수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제가 제 삶의 모델이고 싶습니다. 너무 무겁게 그 짐을 짊어지기 보단 제 스타일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삶을 만들고 싶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요. 다음 편에서는 저의 음악과 방송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시고요. 우리 곧 만나요.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