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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 염혜란, 장윤주 그리고 안은진 ‘시민덕희’의 그녀들

배우 라미란, 염혜란, 장윤주, 안은진은 영화 <시민덕희>에서 줄곧 달린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평범한 시민 ‘덕희’와 그녀 곁의 든든한 세 친구가 벌이는 추적극에서 넷은 한시도 멈춰 서 있는 법이 없다. 그녀들은 떼인 돈을 되찾기 위해 한국에서 칭다오로 종횡무진 달리지만, 캐릭터의 옷을 벗은 스크린 밖에서도 나아간다. <시민덕희>로 뜨거운 한때를 보낸 그녀들이 다시 <더블유>의 카메라 앞으로 달려와 뭉쳤다.

기자간담회에서 박명주감독이 이런 말을 했어요.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주는 연기가 캐릭터와 굉장히 잘 어우러졌다.” <시민덕희>에서 맡은 ‘숙자’는 장윤주와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요?

‘숙자’는 일단 취미가 재미있는 친구예요.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홈마’를 취미로 하는 캐릭터인데 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화끈한게 특징이에요. 다른 주인공들이 칭다오행 결정을 망설일 때도 일단 가보자고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죠. 그런 ‘숙자’가 저랑 막 그렇게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아요(웃음). ‘숙자’의 성격은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카드이기도 했고, 그걸 좀 잘 꺼내면 되지 않을까 하면서 접근한 것 같아요.

소문으로 전해지는 ‘가정방문’의 실체도 궁금합니다. 촬영중 배우 안은진을 집으로 초대해 같이 연습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하하. ‘숙자’처럼 말했죠. ‘같이 한번 해보자!(웃음)’ 은진이랑 둘이서 시나리오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를 맞춰봤어요. 서로 맡지 않은 역할까지 해가면서. 사실 은진이가 현장에서 막내고 저도 배우로선 아직 배워가는 입장이다 보니 서로 많이 의지한 것 같아요. 그리고 <시민덕희> 팀이 좀 그런 구석이 있었어요. 서로 정말 즐겁게 으쌰으쌰 하면서 작업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정말 그 어떤 현장보다 많이 웃었던 것 같아요.

2021년 영화 <세자매>로 호평받은 후 <시민덕희>로 돌아온 셈이에요. 배우로서 그사이 여러 경우의 수가 있었을 듯한데 <시민덕희>를 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영화 <베테랑>을 2013년에 찍고 2015년 극장 개봉하면서 모델에서 배우로 첫 연기 데뷔를 했잖아요. 사실 그 이후로 감사하게도 출연 제안을 여러 번 받았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했어요. 연기에 확신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의외네요. <베테랑>은 첫 스크린 데뷔작이었음에도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했잖아요. 때론 이런 숫자들이 ‘나’에게 확신을주기도 하는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제가 18세에 모델로 데뷔했는데 그와 동시에 영화 제의가 많이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패션에 거의 미쳐 있던 시기여서 큰 뜻이 없었어요. 정말 좋은 기회로 <베테랑>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실은 그 후에도 연기의 메커니즘에 대해 패션만큼 파악하진 못하고 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후 제안해주시는 역할에 죄송하지만 번번이 고사 의사를 전했고, 그러다 <베테랑> 이후 거의 6년 만에 <세자매>에 출연한 거예요.

<베테랑>의 ‘미스봉’과 <세자매>의 ‘미옥’ 사이엔 엄청난 이미지 낙차가 있죠. 몸에 착 달라붙는 핫핑크 트레이닝복을 입고 첫 등장했던 ‘미스봉’과 달리 ‘미옥’은 만년 슬럼프에 시달리는 극작가였어요. 차기작에서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꺼냈음에도 그게 자연스레 작품에 묻어나면서 연기자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는 평을 받았고요.
그렇죠. 그런데 처음 <세자 매〉 제의를 받았을 때도 실은 엄청나게 고민했어 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이렇게 거절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한번 해볼까?’ 그렇게 <세자 매〉를 찍었는데 확실히 저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 어준 작품이었어요. 그간 지고 있던 연기에 대한 무게감을 좀 덜고 ‘연기를 다시 한번 해보자’는 계기를 만들어줬으니까요. 사실 <시민덕희>도 <세자매>가 아니었다면 도전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세자매> 때 ‘한번 해볼까’ 했던 마음이 <시민덕희〉 때 ‘재미있게 한번 해볼까’로 바뀔 수 있었어요.

배우로서 당신의 어떤 얼굴이 더 발견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나요?
음, 글쎄요. 사실 작년에 영화 한 편을 찍으며 만난 캐릭터가 있어요. 제가 느끼기엔 옷으로 따지면 유니클로 같은 느낌의 인물이에요. 미니멀하고 표정도 많지 않고 깨끗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님이 매번 제가 즐겁고 재미있는 캐릭터를 하는 것 같아서 제 안에서 의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작년 그 작품을 찍으면서는 저 스스로도 무척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식의 발견이라면 어떤 인물이든 늘 반가울 것 같아요.

요즘 자신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요?
사실 오래전부터 유튜브 채널을 해볼까 생각해왔는데 작품을 연이어 하다 보니 엄두가 안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정말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어요. 평소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정신 차리고 보니 단편영화처럼 인트로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콘티 작업까지 직접 하고. 유튜브에선 제가 만난 세계들에 대해 말할 것 같아요. 거기엔 몸의 세계도 있고요. 그냥 ‘나다운’ 걸 해보고 싶어요. 대중적으로 가진 않고요. 제가 대중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냥 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컬러를 잘 녹이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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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KOREA. Jan.

포토그래퍼 김희준
에디터 전여울, 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