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다오, 가을바람을
Jang, YoonJu
With Your Own Voice
그녀를 좀 더 알게 된 건 2006년 여름, <스타일 북>에서였다.
책을 통해 자신만의 취향과 감성에 대해 나긋이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그녀를 떠올리면 화려한 런웨이가 떠올랐다.
어떤 느낌인지 도무지 정의내릴 수 없는 ‘시크하다’나 ‘트렌디하다’ 같은 단어들이 그녀에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진짜 내 길을 찾지 못했다는 압박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에디터에겐 ‘모델 장윤주’가 그렇게 보였다.
일찌감치 꿈을 찾아 당당하게 그 길을 걷고 있는 그녀처럼 스타일을 찾고 싶었다.
그녀의 취향과 감성을 훔쳐서라도 스타일 있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여자가 되고 싶었다.
그땐 그랬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화려하게 보여지는 삶에 지쳐갈수록 그녀는 작은 옥탑방에 숨어들어 곡을 짓고 가사를 쓰고 있었던 것을.
이미 꿈을 이룬 듯 보이던 소녀는 혼자서 조용히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는 걸,
‘뮤지션 장윤주’로 마주앉고 나서야 알았다.
2005년 봄, 장윤주를 비롯한 여섯 명의 아티스트가 각기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머물며 작업한 결과물을 함께 보여준 책 를 통해
장윤주는 런던과 파리에서 직접 쓴 곡, ‘Fly Away’와 ‘Martini Rosso’를 발표했다.
여행지에서의 자유와 설레는 청춘을 노래한 ‘Fly Away’는 당시 싸이월드 배경음악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녀의 삶을 동경하는 20대 여성들에게 이 노래는 ‘장윤주의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의 연장선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해 12월, 패션지 <보그 코리아>에는 조각가 김일용에 의해
그녀의 신체 각 부위를 석고로 본떠 재조립하는 ‘라이프 캐스팅(Life-Casting)’ 과정이 공개됐다.
100년 동안 다시 만나볼 수 없는 ‘신이 내린 몸매’라는 극찬과 함께.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탑모델, 장윤주였다.
몇 해가 지난 2008년 봄, 정재형의 앨범 에 수록된 ‘지붕 위의 고양이’를 피처링한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만 해도 잘 나가는 모델의 우아한 취미 활동이라 생각됐다.
그들이 노래하는 ‘파리의 카페 소음’과 ‘이웃집 장 마리 부부’는 모델들의 세계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같은 해 11월, 그녀는 장윤주라는 이름 세 글자가 찍힌 앨범 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도 12곡으로 꽉 찬 정규 앨범이었다. 앨범에 실린 전곡을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도맡았다는 설명에도 괜히 석연찮았다.
정재형이나 이적, 루시드폴, 유희열 같은 이름이 당연히 섞여있을 거라 생각하며 수록곡 리스트를 살펴봤다.
분명하고 단단한 편견이었다. 데모 버전 그대로 실린 ‘옥탑방’ 가사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좁은 골목 길을 지나 저기 보이는 옥탑방 / 나를 반기고 있는지 아님 가로막고 있는지(‘옥탑방’ 가사 中)’
순간, 그녀가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모델 장윤주’가 아닌 ‘사람 장윤주’가 보였다.
런웨이에서 내려와 화장을 지우고 킬힐을 벗은 채 맨발로 서 있는 한 소녀. 마침내 우리의 지평선의 높이가 같아졌음을 느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12년 가을, 그녀가 두 번째 정규 앨범 발매에 앞서 ‘가을바람’을 선보인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생각했다. ‘이 여자, 앞으로 계속 음악 할 거구나.’
그녀를 만나야 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꿈, 윤주
영화(서울예전)를 전공했더라구요.
(웃음) 97년부터 모델 일을 시작해서 어릴 때부터 계속 찍히는 일만 하다 보니 찍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로 대학에 진학한 거죠.
시나리오 좀 끄적거리다가 거의 매일 놀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때부터 음악하는 사람들이랑 더 친하게 지냈다면서요? (웃음)
참 웃기는 아이였죠. 모델인데다, 1년 재수생인데다, 맨날 타과수업(실용음악)이나 듣고… (웃음)
가서도 하는 거 없이 구경만 했어요. 쟤 잘한다, 하면서 혼자 평가하고 신기해하고.
그때 배우고 본 게 제가 음악에 대해 아는 전부인 것 같아요.
알고 지내던 친구한테 피아노 레슨 받는답시고 매~일 옥탑방에서 딴 짓하고, “야, 너 이런 음악 들어봤냐?” 하면서 서로 뻐기고. (웃음)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다 저에게 도움이 되는, 필요했던 경험들이었어요.
모델의 길을 걷고 있으면서 영화나 음악은 취미로 즐겼던 건가요?
그때도 바쁘게 모델 일을 하고 있었던 때긴 했는데, 그러면서도 내한공연 같은 건 기를 쓰고 보러 다녔어요.
그때는 모든 것들이 다 내 손 안에 있어야 하는 시기였어요.
취향에의 욕심이었네요.
네. 근데 그렇게 음악이나 영화에 빠져있었던 게 모델 일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영감을 많이 줬죠.
모델도 감정선이나 분위기를 잘 컨트롤해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직업이니까요.
패션모델로서 패션계 사람들 사이에서도 ‘윤주는 음악을 좋아하는 애’라는 수식어가 생겼고.
그렇게 음악 듣는 걸 좋아만 하다 ‘Fly Away’를 발표하게 된 거였어요.
그게 처음 쓴 곡이었다구요?
여행가서 렌트한 집에 피아노가 있길래 즐겁게 하하호호 하며 놀다가 만든 곡이에요.
지금도 (정)재형 오빠랑 (조)원선 언니는 놀려요. 어떻게 그렇게 음을 폭넓게 써서 노래를 만들 수 있냐면서. (웃음)
전문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그 곡이 화성악의 형식에서 자유로워 보였나보다. 사람들 반응은 굉장히 좋았잖아요.
나는 재밌게, 솔직하게 쓴 곡인데 사람들이 좋아해주니까 좋았어요. 통장에 돈이 막 들어오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자신감을 얻었나요?
자연스럽게 정규 앨범 얘기가 회사를 통해 나왔어요. 다음해부터 6곡 정도를 녹음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모든 작업을 멈췄죠.
아무래도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음악을 만들고 녹음을 했어요.
재형 오빠랑 (이)적이 오빠한테 들려줬더니 “앨범 왜 안내냐”고 하더라구요. “나, 가수 데뷔 하라고?” 물었죠.
오빠들이 그랬어요. “응. 데뷔하라고. 너 음악 계속 할 거 아니었어?”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나중에 시간이 지나도 그때도 여전히 넌 준비가 안 됐다고 할 거야” 하더라구요.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지금의 모습을 노래할 수 있는 건 지금뿐이라고. 그렇게 2007년부터 기획한 앨범이 녹음만 거의 1년 걸렸어요.
윤주씨가 마음만 먹었다면 친하기로 소문난 아티스트들에게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근데 그러질 않아서 더 멋있었어요.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바라는 게 아니면 멋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내가 직접 쓴, 내 음악에 대해 알리고 싶었으니까요.
‘뮤지션 장윤주가 모델을 한다’가 아닌, ‘모델 장윤주가 음악을 한다’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있었죠 물론. 그건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맞출 수 없다는 걸 전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요.
음악만큼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모습을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 앨범을 다 들어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그 진정성을 느꼈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어떤 소리를 내려고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는지를 알 거라 생각해요.
색안경 끼고 보는 사람들은 어쩌면 내 음악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사람일 거야 분명히.
#무한도전, 윤주
2010년에 출연한 <무한도전>이 사람들과 ‘하이패션 모델’ 사이의 거리감을 많이 좁혀준 것 같아요.
그전까진 모델로 계속 자리를 지키고는 있었지만 방송 노출이 거의 없어서 길가다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되고,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진행도 맡게 되고. 점점 모델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더 커지는 거예요.
나는 사실 모델이고, 그러면서 언더그라운드의 마이너한 요소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지션이었는데, 갑자기 메이저로 들어간 느낌이었죠.
그렇다고 제가 스타는 아니거든요. 제가 전문가지, 스타라고는 생각 안 해요. 물론 대중적으로 어필된 것에 대한 기쁨은 있어요.
하지만 너무 상업화에 속해진 모습으로만 부각이 되는 것 같아서 속상하기도 해요.
대중 매체는 대중들이 원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버리니까요.
네, 맞아요. 예를 들면 아이라인에 포니테일에 킬힐, 이런 정형화된 모습들 같은 거죠.
물론 저도 모델로서 그런 모습들을 잘 표현해내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만 원하고 기억하니까.
처음엔 경제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즐겁고 바쁘게 지내다보니까 어느 정도 만족이 되더라구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그토록 가져가고 싶었던 마이너의 성향들이나 컨텐츠들과 너무 멀어진 것 같다.
과연 지금 내가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가? 다시 마이너의 것들을 가져가야겠다 했죠.
예를 들면, 돈과 연관이 안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작업들,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쟁이’들의 재밌는 놀이 같은 거요.
근데 또 그게 맘처럼 안 되는 거예요. 시간도 에너지도 없고, 늘 지쳐서 쉬고 싶다는 생각만 했어요.
작년 한해만 해도 여러 브랜드의 전속 광고 모델이 됐어요.
제가 안 하는 광고 중 하나가 술 광고예요. 그걸 제가 나쁘게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광고는 결과물이 상업적으로 정확히 표현되어야 하고, 어쨌든 제가 상품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전 술도 잘 안 마시는데다가 술 광고를 하면 제가 너무 힘들 것 같아서 회사에 이야길 했어요.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술 광고와 속옷 광고 중에선 아름다움의 속옷 광고를 하겠다고.
제가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걸 수도 있겠지만 이건 지켜달라고 회사에 설득했어요.
회사는 야속했겠네요. (웃음)
알겠다고 하면서도 “그렇지만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하죠. (웃음)
광고 촬영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한테 물어봐요. ‘윤주야, 이 광고가 너에게 결국 안겨주는 게 뭐니?’
돈?
네. 사실 이런 생각을 전엔 전혀 안 했어요. 갑자기 1년 사이에 전속 계약을 5~6개 하게 된 거예요.
차라리 <무한도전> 출연했던 2010년엔 너무 재밌게 일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것들을 보게 된 시기였죠.
근데 그 다음해엔 그 파급력이 광고 섭외로 이어지더라구요. 그게 좋고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짜증도 많이 생겼어요.
회사에서도 이런저런 섭외나 요청이 들어오니 스케줄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세 번째 시즌이 시작되고. 그 안에서도 진정성이나 내가 가치 있게 가져가야 할 ‘후배양성’ 보다는
뭔가 포장되어지고 거만하게 보여야 되는 부분들이 있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일하면서도 계속 나 자신에게 물었어요.
이게 과연 맞는 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내 삶의 목표가 돈이 아닌데, 인기도 아닌데….
더 이상 안 되겠더라구요. 빨리 앨범을 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스케줄을 최대한 비우고 본격적으로 녹음에 들어간 게 지난 8월부터에요.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요즘은 좀 어때요?
내가 그동안 이렇게 맘 편하고 속 편할 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아요.
#싱어송라이터, 윤주
바쁜 와중에 앨범 작업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작년 가을 즈음, ‘그랜드민트’ 페스티벌 레이디로 공연 준비를 하게 됐어요.
2008년에 1집 앨범 내고 1년 정도 한창 공연하고 나서 2년 반 넘게 쉬었던 거였는데,
오랜만에 공연 준비를 하는데도 그게 일 같지 않았어요. 놀러다니듯이 신나게 왔다 갔다 했죠.
그때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어서 감독님이 2주 넘게 저랑 같이 다니셨는데, 그분이 그러시는 거예요.
“윤주씨가 가장 행복하고 에너지 넘칠 때가 언젠지 알아요?” 하고.
언제냐고 물으니 제가 음악하는 사람들이랑 모여서 연습할 때 가장 행복해보인데요.
나도 의식 못하고 있었던 건데. 그때 절실히 느꼈죠.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말고 일을 줄여서라도 시간을 만들어 앨범 준비를 해야겠구나.
음악만 하는 사람도 앨범 예정 시기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늦어지더라구요. (웃음)
그래도 곡은 틈틈이 쓰고 있었어요. 사실 1집 내고 나서 바로 2집을 낼 생각은 없었거든요.
1집 앨범 작업을 너무 힘들게 해서… 처음 내는 앨범이라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했어요. 내가 과연 앨범을 내는 게 맞는 건가?
나는 탑모델이니까 이 정도 사운드는 내줘야하는데, 이 정도 퀄리티는 나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많았죠.
힘들게 나온 앨범이라 애정도 많았겠어요.
작업 과정도 힘들었지만 우리 회사가 전문 음반회사가 아니다 보니까 처음 부딪히는 일들이 많아 앨범 활동에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이제껏 서왔던 패션쇼와는 너무 다른 무대일 거라 예상은 당연히 했는데 막상 공연을 해보니 막막한 거예요.
사운드부터 컨셉까지 모두 신경 쓰고 결정하고, 패션쇼처럼 20~30분이 아니라 2시간이라는 긴 호흡을 끌어가야 하고 책임져야 하는 거죠.
런웨이에서 아래에 있는 관객들을 쳐다보지 않는 게 이미 버릇이 된 상태에서 관객들과 아이컨택을 하려니까 울렁증 같은 것도 생기고. (웃음)
1집 앨범 자체로는 만족스러워요. 나 자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끌고 갔으니까.
연주자들이 심지어 “그럴 거면 윤주씨가 직접 드럼도 치고, 베이스도 치고, 원맨밴드로 하세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깐깐하게 굴었어요.
연주자들한테 100%를 맡기질 못한 거예요. 내가 음악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웃음)
그래서 이번엔 그 부분을 놓아버렸어요. 김정범(푸디토리움)씨에게 프로듀싱을 부탁했죠.
예전부터 푸디토리움 팬이었는데, 저랑 감성적인 코드가 잘 맞을 것 같아서 작년 겨울에 무작정 부산으로 찾아갔어요.
전체적인 편곡과 사운드를 맡아주셨는데, 의지할 사람이 있어선지 작업 과정이 훨씬 더 편해졌어요.
대부분의 곡들을 연주자들이 함께 모여 합주로 진행하는데, 편곡이나 사운드가 맘에 안 들었으면 분명히 트러블이 있었을 거예요.
근데 정범 오빠에게는 믿음이 있어요. 서로 생각하는 감성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좋아하는 ‘슬픈’ 감성은 대성통곡하는 게 아니거든요. 따뜻하고 아름다우면서 애잔한, 그렇게 ‘슬픈’ 감성이 좋아요.
사람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거, 그런 게 전 좋아요.
대중 매체를 통해 비친 윤주씨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분위기라는 거 알죠?
네. 알죠.
음악으로 또 다른 감성을 보여주자는 용기를 낸 게 1집이었을 텐데, 경험이 쌓인 만큼 2집에 더 욕심이 생기지 않던가요?
1집을 내기 전엔 심할 정도로 많은 음악을 들었어요. 1집 땐 곡마다의 레퍼런스도 다 정해놨죠.
느낌이나 톤까지 세세하게. 근데 2집을 준비하면서는 그렇게 음악을 찾아 듣는 걸 쉬었죠.
레퍼런스 같은 것도 하나도 안 정해놓고. 그리고 제가 만든 곡의 코드는 손보지 않고 그대로 가는 걸로 정범 오빠와 얘기를 했죠.
1집 땐 편곡하는 과정에서 코드나 연주를 많이 바꿨거든요.
그래서 제가 원래 곡을 썼던 것보다 세련되어지긴 했는데, 그게 나중에 보니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이더라구요.
왜요?
곡을 쓸 때 제가 원래 의도했던 순수함이 변질되더라구요.
윤주씨가 생각했던 옷과는 다른 옷을 입게 된 거구나.
맞아요. ‘가을바람’도 코드 진행은 단순하고 반복적인데 아예 손을 안 댔어요.
대신 전체적인 연주나 사운드에 신경 썼죠. 제가 원래 의도했던 순수함이 살아있어서 좋아요.
#여자, 윤주
앨범 타이틀은 정했어요?
아니요. 아직도 고민 중이에요. ‘가을바람’을 먼저 공개하고 한두 달 후에 정규 2집이 나올 텐데, 다음으로 생각하는 곡이 ‘I’m Fine’이거든요.
가사가 이래요. ‘나는 평범하죠 밥도 잘 먹구요 / 눈물도 많아요 나는 여자에요 / 걷기를 좋아하죠 편한 차림으로 /
불편한 힐은 벗고 화장은 잘 안 해요… 그대 어깨에 기대어 온종일 노래를 불러요 / 이런 날 안아줘요 이대로 난 좋아요’
이 곡은 ‘모델 장윤주’가 아니라 ‘여자 장윤주’로 쓴 노래에요. 저에 대한 편견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기자님도 저도, 우리 다 일하는 여자들이잖아요. 연애할 때 남자들이 그러죠. “넌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저는 그런 말이 그렇게 슬프더라구요. 서운한 마음에 여자는 이러죠.
“아니에요. 저는 당신만의 사랑이 필요해요. 왜 저를 그렇게 ‘센’ 여자로만 보시나요.” 마치 신파에 나오는 대사 같죠? (웃음)
근데 저도 그럴 수 있거든요. 나도 같은 여자이고, 오직 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한데.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말이 짠한 거예요.
울며불며 짜는 느낌이 아니라 담백해서 더 좋네요.
1집 땐 ‘가사도 시적으로 써야 돼!’ 이런 게 있었는데, 이번엔 안 그랬어요. 멋 안 부리고, 솔직하고 심플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생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나요?
글쎄요. 예전엔 그런 생각을 잘 안 했는데, 2년 전부턴가 ‘여자’라는 의미에 집중하게 됐어요.
어렸을 땐, 괜히 좀 더 터프하고 털털하고 매니시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애쓰고 그랬는데, 30대가 되고 나니까 달라지더라구요.
옷을 입어도 조금이라도 페미닌한 요소를 넣게 되고. 이젠 남장을 하고 다닌다 해도 내가 여자인 걸 속일 수가 없는 거예요.
변화하는 몸의 곡선도 그렇고. ‘아, 내가 여자가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실 그전까진 연애를 해도 내가 앞장서서 리드하려고 하고 (그땐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남자를 깔아뭉개고, 뭐하면 “웃기고 자빠졌네, 됐어! 내가 할게” 이러고. (웃음)
자신을 지키려고 강해진 거겠죠? (웃음)
여자가 사회에서 일을 하다보면 기가 세지고 어느 정도의 단련이 필요한 것도 있죠. 가끔씩은 내가 여자인 것 자체도 싫은 적이 있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해서 더 그런 것도 있어요. 근데 30대가 되고 독립을 하고, 내 집을 직접 꾸미고, 직접 밥도 지어먹고 하다보니까 여자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아, 내가 여자구나, 여자이고 싶다’ 이런 생각.
보통 여자들이 그럴 때 결혼을 하는 것 같아요. (웃음) 윤주씨는 그 감정을 결혼 대신 음반에 풀어냈네요?
그러네요. ‘가을바람’ 만들기 시작할 땐 막연하게 ‘바람이 나고 싶다’였는데 곡을 쓰다 보니 그 마음이 결국 한 사람으로 집중되더라구요.
마지막 가사가 ‘그대를 원해요’에요.
도발적인 느낌이 아니라 쓸쓸하게 혼자 읊조리는 느낌이더라구요.
‘가을바람이 분다 이리저리 / 그네 타던 그 소녀는 사라지고 / 코스모스도 흔들려 휘청휘청 / 내 치맛자락도 춤춘다 살랑살랑 /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그대 알고 있나요 / 노을진 하늘 그댈 닮았죠 나와 함께 갈래요 /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대 내 손을 잡아요 /
지난 여름밤 내리던 비는 이제 그쳤죠 / 우리의 눈빛 이제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죠 그대를 원해요’
(그녀가 ‘가을바람’ 가사를 읊고 있는데 정말 가을바람이 쉬익~ 하고 불었다.)
#아름다움, 윤주
윤주씨가 인생에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뭐예요?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자연스러운 거예요. 무엇에 치우치지 않고,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정범 오빠한테 녹음하러 오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 편하고 즐겁다고 했더니
“본업이 아니라서 그래” 하는 거예요. 너무 무서운 말인 것 같아요.
“음악 잘 안 되도 아쉬울 거 없잖아. 모델하면 되니까” 하고 삐뚤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죠?
절박한 상황에서 만든 음악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전 음악을 꿈꾸는 사람인데, 사람들이 보기엔 전 이미 모델이라는 꿈을 이룬 사람이니까요.
꿈을 이룬 사람이 거기에 다른 꿈 하나를 추가하는 게 절박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죠. 어떻게 보면 그래서 내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감사하죠. 물론 내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면 좋겠지만, 그것보단 대중들에게 이것도 하나의 문화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선 모델이 음악을 하면 재수 없다고 생각할진 몰라도 이런 문화나 색깔은 보다 다양함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모든 음악이 ‘아이돌’ 아니면 ‘소몰이’로만 갈 순 없잖아요. 제가 ‘패션과 음악을 겸비한 아티스트’, ‘아이콘’이 되려고 음악을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저 내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놓는 거예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아이콘으로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안의 본질이나 진정성은 내가 너무 하고 싶었고,
해보고 싶었고, 하게 됐고, 자연스레 이렇게 되어버린 거죠.
윤주씨는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잖아요. 자아가 강한 사람.
네. 맞아요.
디렉터가 원하는 느낌을 표현하는 모델 일이 잘 맞는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듣고 그걸 기가 막히게 표현해주죠. “시키면 잘 해요. 전 모델이에요.
대신 표현하고 대신 살아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맞아요. 그게 또 희한하게 일상으로 이어져요.
누군가 나에게 뭘 시키면, 거기에 내가 살을 붙여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줘요.
모델로서 연륜과 경험이 쌓였으니 이젠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만 그대로 받아쳐줄 바엔 아예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안 그러면 수동적인 ‘도구’밖에 안 되는 거니까. 장윤주의 생각과 표현력을 붙여서 표현할 때 가장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아름다움은 젊음에 많이 집중되어 있잖아요. 물론 영원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만.
윤주씨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뭐에요?
오늘도 메이크업 하시는 실장님이 턱선이 살짝 쳐진 것 같다고, 무슨 주사를 맞으면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그 얘기 들으면서 그런 주사 안 맞고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투턱’이어도 미소가 아름답고 마음이 예쁘면 그게 아름다운 거 아닌가?
세상이 만들고, 화면에 비춰지는 아름다움은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겠구나.
사람 본래의 것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게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 들어서 많이 했어요.
그것들을 우리가 살면서 잊어버리고 있을 때 자연을 통해서 많이 리마인드 될 수 있다는 것도.
30대가 되어 돌아보는 20대는 어때요?
20대는 열정을 갖고 많이 보고 죄다 부딪혀봐야 할 때인 것 같아요.
20대 초반, 내가 모델 일에 빠져있었을 때는 모델이 나에게 최고의 직업이었고,
그 일을 잘 하기 위해 음악도 많이 듣고, 영화도 많이 보는 아이였거든요. 패션에도 미쳐있었고.
근데 언젠가부터 그걸 조금씩 놓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내가 가장 잘 하는 것만 고집하게 되죠.
그 부분에 있어서 가끔씩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하는데,
그래도 이것저것 다 해보다 내 걸 찾아가는 시기가 분명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시간동안 잡지도, 옷도 보러 다니지 않았어요. 그때 음악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윤주씨의 30대, 40대는 어떤 모습일까요?
바로 앞의 계획 중 하나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지금 고민 중인데, 하나는 음악을 정식으로 배워볼까 하는 거고
다른 또 하나는… 제가 패션이나 음악, 방송을 통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 안에서 흘려보내지는 것도 있고 채워지는 것도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내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위로’인 거예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심리상담 같은 걸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장윤주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은 지금도 여전히 패션화보와 브라운관을 장식하고 있다.
그녀 자신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은 음악 CD에 담겨진다.
비현실적인 화보 속에만 살 것 같은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의 일상과 자연스레 섞일 수 있었던 건 음악의 힘이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노래를 짓고 부르며 자신을 되찾았고, 그러는 사이 10대 소녀는 30대 여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제 자존심을 세우는 건 자존감과는 별개의 일이며 솔직하기만 한 것과 진실한 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예쁜 사람과 아름다운 사람, 똑똑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미세한 차이를 알아간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얼굴, 이제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할 나이를 살고 있는 ‘여자 장윤주’의 지금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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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조하나
Photographer | 김희언
by F.OUND | 2012.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