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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여자, 장윤주를 만나다

우리가 기억하는 장윤주는 누구일까. 얼마 전 남편, 아이와 함께 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장윤주는 육아에 서툴지만 솔직한 엄마였고, 또 출산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멋진 모델이었다. 그러나 장윤주가 활동을 재개하며 드러낸 모습은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2017년의 장윤주에게는 조금 다른 수식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모델로서 근사한 무대를 누볐고,
꾸준히 방송에 출연했고, 라디오 DJ를 맡아온, 이렇게 다재다능한 그가 복귀 후 또 한 가지 선보인 건 바로 음악이다.
10년 전부터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온 장윤주가 5년 만에 새 미니앨범 <LISA>를 내놓았다.
사랑스러운 딸 리사를 향한 노래이지만, ‘엄마’ 보다 ‘음악가’라는 수식을 좀 더 앞에 두고 싶은 건 맑은 목소리와
아늑한 선율로 내면을 통과하는 장윤주만의 음악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장윤주를 만났다.


결혼과 출산 후 곧바로 여러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실 공백도 없이 꾸준히 활동해왔는데, 복귀 후에 달라진 시선이 있나요?

최근 출산 후의 첫 런웨이도 마쳤고, 화보도 찍었어요. 그런 제가 모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무한도전> 게스트나

영화 <베테랑>의 ‘미스봉’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20대 초반 여성들에게는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때 모습으로 많이 기억되고 있을 것 같네요.
그런데 아이 낳고 나서 모든 이미지가 다 리셋된 것 같기도 해요. 결혼과 출산 이후 몸도, 생각도 그렇고 제 삶은 말할 것도 없이 변했으니까.
사람들이 저를 인식하는 시선도 마찬가지죠. <신혼일기 2> 방송 나간 후로 일단 ‘엄마들’은 저를 단숨에 알아보시더라고요.(웃음)

싱어송라이터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특히 ‘Fly Away’ 같은 곡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죠.
그러고 보면 올해 또 하나의 앨범을 낸 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여요.

음악 한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아직 더 많아요. 사실 2집 앨범을 내고 나서는 이제 앨범 안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늘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부끄럽기도 했고요. 3집 앨범은 정말 실력 있는 사람들만 내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1집, 2집은 어떤 열정으로 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번 미니앨범 <LISA>는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출산 후에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신혼일기 2>에 출연하기로 했어요. 이런 퀄리티 있는 프로그램에서라면

남편과 아이와 함께 출연해도 되겠다는 믿음이 들었거든요. 그러다가 제작진으로부터 OST 이야기가 나왔어요. 제가 곡을 써보겠다고 했죠.
그렇게 <신혼일기 2> OST 앨범으로 제작하려고 했는데 일정상 여러 문제가 생겼고, 결국 자체적으로 앨범 제작을 하게 됐어요.

2012년 발매한 2집 <I`m Fine> 이후 거의 5년 만의 앨범인데요. 오랜만에 한 음악 작업이라 힘든 점은 없었나요?
아이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가 명확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1집, 2집보다 쉽게 풀어낼 수 있었어요. ‘LISA’라는 곡은 2011년도에 멜로디를 만들었던 곡인데,

아이 낳고 나서 마음이 우울할 때마다 전에 써 놓은 곡들을 쭉 훑다가 다시 발견한 거예요. ‘영원함을 꿈꾼다’는 <신혼일기2> 촬영하고 나서
여러 감정이 막 뒤섞여 있을 때 쓴 곡인데요. 곡을 만들 때 어떤 수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경우가 있는데, 이 곡은 제자리에서 그냥 스르르 만들었어요.
아이랑 아빠가 자고 있을 때 집에서 혼자 써 내려갔죠.

첫 앨범 <Dream>이 ‘소녀’ 감성이었다면, 2집 <I’m Fine>에서는 소녀에서 ‘여자’로,
<LISA>에서는 여자에서 ‘엄마’가 되어가는 감정이 담겼어요. 마치 장윤주의 성장앨범이에요.

아이를 낳고 나서 많은 감정 변화가 있었어요. 그 혼란들을 음악으로 정리하니까 부담감이 많이 털어지더라고요.
특히 이번 앨범은 되게 즐겁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1집, 2집 때는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랬다면,
이번에는 별 고민 없이 제가 할 수 있는 실력 안에서 가장 나다운 음악을 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번 앨범을 내고서 스스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계속 노래해야겠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먹은 거예요.

이번 노래는 가사가 정말 진솔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특히 엄마 테마곡 ‘영원함을 꿈꾼다’는 남편 정승민 씨와 함께 작사해서 더 그런 걸까요?
처음에는 가사를 너무 현실적으로 터프하게 써서 그랬는지 남편이 예쁘게 다듬어보자고 하더라고요. 가사는 엄마인 저의 이야기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겪은 변화와 고민을 제 곁에서 가장 많이 지켜본 남편의 조언이 도움이 됐어요. 남편은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에 가장 필요한 도움을 주거든요.

뮤지션 주윤하 씨가 앨범 편곡을 맡으셨더라고요.
고민 없이 개인적으로 친한 주윤하 씨를 떠올렸죠. 윤하 오빠 음악이 예쁘기도 하고요. 윤하 오빠와는 2010년쯤 보드카레인 활동 당시에
제가 앨범 피처링을 하게 되면서 인연이 닿게 됐는데요. 그때 이후로 앨범 소개글을 쓰기도 하고 공연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친해졌어요.
아니, 그냥 주윤하의 팬이 되었죠. 무대에서 보면 정말 빛이 나요.

앨범 <LISA>에 대한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나요?
일단 방송을 본 엄마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것 같기는 한데요.(웃음) 돌이켜보니 2005년에 첫 싱글 ‘Fly Away’라는 곡을 만들고
직접 싸이월드 음원 유통사를 찾아갔던 기억이 나요. 그때 싸이월드가 한창 인기였는데, 다행히 음원이 실리게 됐고 반응도 좋았어요.
이번 앨범은 그때와 왠지 비슷한 느낌이에요. 음악에 대한 피드백을 기대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음악으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만 듣기 위해 만든 건 아니거든요. 사진이나 그림 같은 모든 예술이 그렇듯 제 음악이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더 즐거울 것 같아요.

오프라인 앨범 발매는요?
큰 유통사를 두고 발매하는 게 아니여서 연말쯤에 한 1,000장 정도 소소하게 만들 예정이에요. 개인적으로 선물하거나 팬들에게만 알리는 정도가 되겠네요.
근데 1,000장이 다 나가긴 할까요?(웃음)



좋아하는 음악가가 궁금해요. 최근 관심 있게 듣는 음악이 있나요?

제가 리사한테 쓰는 일기장이 있는데요. 거기에 이런 글을 썼어요. 엄마는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멋진 뮤지션이 되고 싶어,
류이치 사카모토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고 싶어, 라고요. 리사 낳고 나서 한동안 다시 류이치 사카모토에 빠져 있었어요.
잔잔하고 감성적인 걸 좋아해요.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음악들이요.

그리고 최근 며칠은 ‘그댄 모르죠’라는 노래도 많이 들었어요. 정재형 씨랑 친분은 있었지만 최근 방송 프로그램 <건반 위의 하이에나>에서 만든 그 노래는
정재형 씨가 거의 7년 만에 선보인 곡이거든요. 특히 오케스트라 편곡이랑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서 정재형만의 독보적인 감성이 집약된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올해 원더우먼페스티벌에도 참여했는데, 사실 이전부터 음악 공연이나 페스티벌에 종종 참여해왔죠.
은근히 많이 했죠.(웃음) 민트페스티벌도 몇 차례 나갔고요. 앨범 나왔을 때마다 공연도 했고요. 이번에도 연말 공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정말 계속 하긴 했는데, 그건 아는 사람만 알아요. 하하.

음악 얘기하다 보니 뮤직비디오도 몇 개 생각나는데요. 직접 출연한 것도 꽤 있지만, 최근 영화 <우리의 20세기>와 콜라보한 뮤직비디오가 떠오르네요.
영화 내용과 노래 분위기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정말 좋았죠. <우리의 20세기> 원제가 사실은 ‘20세기 여성들’인 거 아세요? 아들을 둔 엄마 ‘도로시아’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노래와 어울리는 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지금의 21세기 여성들이 어떤 세대와 어떤 소통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한 과정도 기억되는 날이 오겠죠.

그러고 보니 서울예대 영화과 출신이에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나요?
영화과는 사실 되게 단순한 생각으로 지원한 건데요. 어렸을 때부터 모델로 활동하면서 너무 ‘찍히는’ 일만 해왔다는 생각에 ‘찍는’ 일도 해보고 싶다는 이유였죠.
제가 대학 가던 때에는 모델들이 전부 모델과를 가곤 했는데, 모델이라서 더 쉽게 들어갈 수 있는 모델과를 굳이 왜 가야 할까 싶었어요.
그래서 수능도 안 봤다가, 1년 늦게 대학에 마음먹고 지원했는데 운 좋게 붙었네요. 그렇게 1년 정도 필름에 대해 배워보니까 나는 ‘찍히는’ 사람이 맞구나 하고
바로 깨달았죠.(웃음) 나중에는 오히려 실용음악과 수업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 친해진 뮤지션들이 많죠.

올해 데뷔 20주년인데, 특별히 기념하기 위해 준비한 게 없다고 들었어요.
올해도 두 달 밖에 안 남았어요.(웃음) 사실 5년 전에는 20주년 기념 전시를 해야겠다는 계획도 있었는데, 그때는 지금의 제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거죠.
그 안에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으면서 원래의 계획은 자연스레 무산됐고요. 섭섭한 마음도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20주년을 특별히 챙긴다는 게
오히려 고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막상 내놓을 작품도 많이 없는데 말이죠.
작년에 윤여정 선생님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로 60주년을 기념한다는 인터뷰를 보고서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모델이자 방송인, 그리고 음악가인 장윤주에게 ‘엄마’가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인생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죠. 행복한 과정이지만 저의 정체성을 단숨에 ‘엄마’ 혹은 ‘아줌마’라는 편협한 시각에 가두는 건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외면적으로도 더 열심히 관리하고 있고, 내면적으로는 스스로 성숙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로부터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제가 하는 일과 주변 사람들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엄마’는 인생에 대한 깊이를 알려주는 긍정적 동기예요.

몸매 관리 비법 같은 건 너무 진부한 질문이니까, 음악에 관해 물을게요. 장윤주에게 음악이란?
음악을 통해서 꿋꿋하게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에 대한 피드백이 없을 때는 상처도 있었죠.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이에요. 제가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대단한 음악은 못하더라도, 내 안의 이야기를 그냥 이렇게 풀어내면 되겠다고 생각해요.
마치 운명처럼,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대로 하면 되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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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이강혁
editor 유미래

ELLE

<엘르>와의 인연
1997년 데뷔하자마자 <엘르>와 화보를 찍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98년 <엘르> 자매지 <톱 모델>과의 작업이다.
막 뉴욕에 진출한 내 활동을 세세하게 실어줬는데, 감사와 감동의 마음이 커 오랫동안 두고두고 꺼내봤다.

나와 <엘르>가 닮은 점
글래머러스하다(웃음)? 앞서가는 여성의 다양한 관심사를 골고루 다룬다는 점이 나와 맞다. 어려운 패션지가 아닌, 글래머러스한 여성지!
그러고 보니 첫 앨범이 나왔을 때 촬영했던 인터뷰 화보도 기억에 남는다.

<엘르> 코리아 창간 25주년, 장윤주 데뷔 20주년이다. 함께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을까
감회가 새롭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선스 매거진, 내 첫 뉴욕 데뷔 인터뷰를 다뤄줬고, 출산 후 이렇게 공식적인 첫 인터뷰까지 함께하다니.
여자, 모델 장윤주는 그간 결혼과 출산을 거쳤고 <엘르> 또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 많은 시도와 경험을 거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한 건 우리 모두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거다. 본성을 잃지 않으면서.

나에게 스타일이란
참 변하지 않는다. 늘 똑같다. 20대 초반에 신었던 레페토와 반스 단화, 편안한 데님, 스웨트셔츠(촬영 당일 역시 이 옷차림이었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나다운 모습을 고집하는 게 취향이 됐고, 그게 내 스타일이 됐다. 단순히 패션 아웃핏뿐 아니라 결국 내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되는 것.

앞으로 계획
얼마 전 세 번째 음반 <리사>를 냈다. 사실 2집 이후 음악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이를 낳은 후의 마음을 솔직 담백하게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3집을 냈고 모든 게 술술, 편안하고 행복하게 작업했다. 디자인과 아트워크를 남편이 해줘 시너지도 있었고.
앞으로 이렇게 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진심으로 즐겁게 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ELLE oct

URBANLIKE

장윤주가 안내하는 세 개의 공간

URBANLIKE
36th issue : 생활공간 Living space in Seoul

  • 에디터 | 천일홍, 이봄
  • 사진 | 사이이다
  • 영상 | 김진범 
  • 스타일리스트 | 곽지아
  • 헤어 | 최고@고원
  • 메이크업 | 고원혜@고원

VOGUE

Yoon Ju

동양적 선과 한국의 색채로 응축된 서울 여자, 장윤주. 사진가 어윈 올라프의 뷰파인더 앞에서 장윤주가 20년 모델 이력을 재창조한다.그리고 배우 유아인이 그녀와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일하는 여자 사람 장윤주

5:5로 단정히 빗은 머리 위로 솟구친 기타 가방이 이색적 그림을 만든다. 합정동 뒷골목이 아니라 경리단 꼭대기의 내 집 비디오폰 디스플레이에
펼쳐진 풍경이니 더 그럴 수밖에. 경계를 풀지 않았던 직장 동료, 수없이 만나면서도 둘이서 커피 한 잔 나눈 적 없던 동료 배우가 내 집 초인종을 누른 것은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다. 등에는 기타 가방을, 한 손에는 일용할 양식을, 또 한 손에는 선물 박스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와 그녀가 내 집의 경계를 넘었다.
그렇게 그녀와 4시간을 함께했다. 기도하고, 먹고, 이야기하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정원에 나가 이 맛이 그리웠다며 담배 한 대를 알뜰하게 피운 뒤
그녀는 떠났다.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정성스럽게 다 풀어놓은 채.

장윤주와 앉았던 식탁 옆에는 그녀가 선물한 일러스트레이터 나난의 ‘롱롱타임 플라워’와 사람 ‘장윤주’에 대한 기억이 반듯하게 놓였다.
몇 해 전,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며 알게 된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패션모델이자 앨범 두 장을 발매한 뮤지션이다.
방송 활동도 활발했다.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입담과 두려움 없는 슬랩스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녀가 진행한 TV 쇼는 톱 모델로 성장한 수많은 신인 모델을 배출했다. 또 5년간 그 쇼를 진행했고, 그중 2년은 자정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겸했다.
커튼이 없던 풍납동 옥탑방 출신의 아침형 인간인 장윤주는 그 많은 일과 일 사이를 제멋대로 오가며 ‘일’했다. 그리고 성취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질문만이 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이란 것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도전’이라는 것 역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결국 후자에 응답한 그녀의 모든 도전은 결과와 수치에 목매는 세상의 천박한 척도를 벗어나 그 자체로 위대한 성취로 다가왔다.
“일을, 그것도 새로운 일을 계속한다는 건 그만큼 연속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거야. 하든지, 말든지.
모든 선택의 순간이 다 감사해서 기꺼이 그 많은 일을 해온 건 아니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며 그 일에 내 영혼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건
그럼에도 즐길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지. 잠깐의 행복, 그 찰나를 향해서 가는 거야.”

2016년 여름. 장윤주는 지난 20년간 기꺼이 그리고 기똥차게 감당한 일을 잠시 접어두고 강제 칩거에 들어갔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절대적 시간’을 통해 그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전에 없던 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15kg이 쪘어.
다른 엄마들은 육아가 너무 힘드니까 아이가 배에 있을 때가가장 편하다고 하던데 나는 리사를 낳고 나서 더 편해졌어. 몸이 가벼워지니까.”
몸이 가벼운 장윤주가 일을 쉬는 순간은 없었다. 물론 임신 전에는 몸이무거웠던 적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가진 몸.
장윤주는 일을 하지 않았던 그 1년 남짓한 시간을 ‘절대적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일을 할 수 없는 시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 ‘집안일’의 시간을 지나 가뿐한 몸을 되찾은 그녀는 ‘바깥일’을 향해 다시 세상으로,
타인에게로 향한다. ‘절대적 이유’라는 게 없다면 살아 있는 한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포부로 가득 찬 청춘의 결기 같은 것으로
포장하는 일 없이 그녀는 ‘삽질’을 어설픈 팬터마임으로 모사하며 ‘일’하는 자신의 모양새와 의지를 유쾌하게 드러낸다.

솔직함과 유쾌함은 주제를 널뛰기하며 마구 뱉어내는 말의 어색한 행간을 단단하게 채워주고 대화 상대의 심각함을 박살 내는 그녀의 강력한 무기다.
“귀족 출신 모델 스텔라 테넌트처럼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나는 그런 귀티가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도들고…”
장윤주와 나는 귀티, 부티, 빈티 같은 단어를 콤보로 연발하고는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물었던 참이다.
일의 숭고함을 환기하는 그녀지만 그런 투정쯤은 일로 먹고사는, 더럽고 치사해도 기필코 살아가야 하는 모두가 하는 것들이지 않은가.
필연적인 투정의 여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내 못난 구석에서 일과 타인에 대한 그녀의 인정과 애정이 부러웠다.
배가 아파서 물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모델 일을 20년 하는 동안 10년 정도의 시간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 나라는 사람을 계속 포장하며 사는 게 힘들었어.
명품을 몸에 휘감고 그걸 더 잘 보여주는 승부를 펼치는 게 내 일인데, 사실 난 그렇게 럭셔리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고작 풍납동 옥탑방 출신이잖아.
계속 ‘척’해야 하는 삶에 부대끼고 자신감도 없었어. 귀족 출신 모델 스텔라 테넌트처럼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나는 그런 귀티가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도 들고.”

자괴감은 과하고 괴리감에 가까울 것이다. 가만히 두었으면 괜찮았을 소외당한 세계. 20년간 그녀를 따라다닌 스포트라이트도
그녀의 영혼까지 비추지는 못했다. 럭셔리 아이템도, 사람들의 박수와 인정도 그녀의 영혼을 살찌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일을 해야만 했던 게 아닐까.
“보디(Body)가 전부는 아니야!” “보디로만 평가해서는 안 돼!” 장윤주는 대화 내내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것으로 평가받고 사랑받은 그녀에게는 그것이 한계이고 족쇄였으리라. 정신과 영혼의 자세가 곧 몸의 자세를 만들고 움직임이란 것 역시 그렇다지만
‘몸’으로 대변되는 모든 결과의 외형을 넘어 대중의 시선이 모델의 내면에까지 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2008년, 스물아홉 살에 첫 음반 을 내놓으며 몸의 이야기가 아닌 영혼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보디’를 향한 각광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내면의 세계를 직접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마저도 5년 가까운 시간을 고민한 결과였는데
거기에는 윤종신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적기가 있다. 40대가 되면 기술적으로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20대의 이야기를 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지금 할 수있는 건 지금 해라.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몇 달 전 출산 후 흐트러진 몸을 수습하던 그녀는 자신의 복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왔다.
돈, 부기, 휴식, 불안, 대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녀는 초심으로 돌아가 꿈과 비전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단한 삶을 살아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수로, 어째서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나는 그녀에게 현재에  집중하라고 했다. 거기에 지금의 초심이 있다고. 먼 훗날 돌이켜볼 만한 그 ‘초심’ 말이다.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매 순간,
우리는 초심을 일궈낼 기회를 날려버리고 지난날의 초심에 얽매이고 어쩌면 그 초심조차 잃어버린 채 지금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장윤주는 모델이라는 일의 범위를 가능한 한 모든 방식을 통해 확장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대중이 함께 성장시킨 ‘장윤주’라는 확장적인 모델을 가지고
현재의 순간에 와 있다. 그녀가 들려준 윤종신의 말을 더하자면 대중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순간 그 주체는 ‘구려지기’ 마련이다.
주장하거나 평가한다고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에 대한 단상

대한민국에서 ‘모델’을 대변하는 장윤주에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모델의 역할이란 무엇일지에 대해 물었다.
그 한계와 해법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함께 물었다. “20대 때는 항상 ‘패션모델 장윤주’라고 나를 소개했어. 근데 지나고 보니
나는 말 그대로 수많은 것의 모델일 수 있겠더라고. 단어 그 자체로 ‘모델’ 말이야. ‘롤모델’같이 흔하지만 좋은 말도 있고, 모델하우스도 있고. 으하하하.
우리는 어쩌면 모두 타인에게 어떠한 모델일 수 있어. 음악의 형태, 그림의 형태, 건축의 형태 같은 것처럼 사람으로서의 형태
그리고 인생의 형태를 보여주는 모델. 나는 ‘사람 장윤주’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모델’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선량함을 가진 ‘모델’. 그게 타인에게 비전이 되고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잖아.
누군가 나를 통해 꿈꾸기도 하고. 뭐 꼭 오‘ 드리 헵번처럼 살겠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우리의 대화가 지나고 난 그날 이후 몇 차례 첨언의 문자를 보내왔다. 욕심 많은 내가 기자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녀는 위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단단히 ‘쿨병’에 들어 어떤 위로에도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던 나를 위로한 그녀의 노래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관심’이라는 영광을 부여잡고 그 이면의 고통에 신음하는 일은 지금 당장 극단적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라도 감당하고 있는 일이다. 자신을 ‘Showing’ 하는 것이 곧 일의 전부였던 패션모델로 10대의 이른 나이에 데뷔해 갖은 평가와 성취,
오해와 결핍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소외당한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상 속에서 ‘일’로써 가진 노력과 성취를 오롯이 제 것으로 사유화해 거들먹대지도 않을 것이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모델 장윤주의 ‘일’, 그 일이 만드는 영향력에 대한 그녀의 성찰은 그녀가 소화한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의상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일을 통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메시지를 전하는 삶이야.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자가 되고파. 내 삶을 통해. 오늘 네가 느낀 것처럼.”
편집된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관찰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더 이상 모델이나 연예인의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의 비약에 따라 욕망의 형태를 달리하는 인간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은 과거의 소셜라이징 형태를 완전히 밀어내고
모든 개개인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집밖의 세상에서 관객에 머물렀던 제 삶의 모든 주인공들이 이제 저마다의 무대를 자신의 단편으로 패셔너블하게 채우고
관심과 애정을 부어줄 관객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 순간, 소셜 미디어의 존폐를 따지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퍼거슨 할배로 족하다.

장윤주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현재의 시스템을 살아가는 우리를 선명하게 비춘다. 그녀는 온전히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느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끈끈하게 얽혀 있는지, 서로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지를 그녀는 안다.
책에서 배우거나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다. ‘절대적 시간’을 가르쳐준 리사가 그런 것처럼,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이 그녀에게 남긴 흔적이다.
그녀는 그것을 번뜩이는 훈장으로 자랑질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에 대한 의문에 파묻혀 번뇌로 허송세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대신, 그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의 흔적이 남은 자신을 세상을 통해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닿은 피부와 피부, 시선과 시선의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과 가장 무관한 화려한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장윤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자세다.
저마다의 장벽으로 담장을 이룬 세상에서 그 너머의 사연과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일. 내 집에 들어온 건 장윤주인데 내가 이만큼 장윤주의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이 일터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필연적 사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일이다.
‘일하는 장윤주’ 그녀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를 가장한 수다) 내내 화려했던 왕년의 기억을 늘어놓는 대신 담담하게
다음 20년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런웨이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따위를 상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런 그림으로 장윤주를 기억한다. 그녀는 그 기억을 소중히 보듬을 것이나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경리단을 떠나기 전 자신의 목소리로 불러준 김광석의 노래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을 향해.
꿈에 보았던 그곳으로. 그녀가 세상에 건넬 위로가, 여기에서 보아도 눈부시다.
그녀를 바라본 수많은 시선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나의 단상이 그녀를 조금 덜 외롭게 하기를! 그녀가 내게 건넨 위로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VOGUE>. Aug.

  • 글_홍식 (a.k.a. 유아인)
  • 에디터_김미진, 남현지
  • 포토그래퍼_Erwin Olaf
  • 헤어 스타일리스트_한지선
  • 메이크업 아티스트_이지영
  • 세트 스타일리스트_최서윤(Da;rak)

ALLURE

Grace Beauty
장윤주의 아름다운 몸

장윤주가 또다시 <얼루어>의 뷰 파인더 앞에 섰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결혼 화보에 이어, 만삭의 몸으로 커버를 장식했다.
임신한 장윤주가 지닌 몸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녀의 삶 중에서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을 함께 기록했다.

엄마가 되길 기다리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윤주는 예전보다 더 깊고 단단해졌다. 장윤주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뿜어내는 따뜻함.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남편을 향해선 담백한 존경을, 뱃속 아이에겐 대담한 용기를 내비쳤다.
장윤주는 일과 사랑 그리고 아이라는, 여자의 인생에서 소중하지만 조율하기 어려운 것들을 느긋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안감을 떨쳐내고 균형 있는 삶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지금은 어떤 기분인가요?
아이에 대해 생각할 땐 언제나 두려움이 함께 떠올랐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제 아이가 생기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얼마 뒤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죠.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오랫동안 불규칙한 생활과 저체중을 유지해왔기에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해요. 지금은 출산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모든 엄마가 그렇듯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거죠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나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좋아하는 것들을 해요. 운동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붓글씨도 쓰고요. 아기에게 주는 선물로
1집에 수록된 ‘April’을 동요로 만들어보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가 생일날 무엇을 했는지, 밥 딜런이 뮤지션으로는 이례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든지, 지금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 같은 것들이죠.
소소하지만 아이가 나중에 당시의 시대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해요.

엄마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죠. 어떤 변화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모델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일이 곧 삶이었죠. 일하면서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했어요.
내 상태, 내 감정,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죠. 결혼한 후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껴요.
아이를 갖고 그 배려와 안정감이 더욱 견고해졌죠. 그리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라가 혼란스러워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되요. ‘내가 항상 깨어 있어야겠구나!’ 깨닫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고 배려하게 되는 거예요.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은 주변을 돌아보는 삶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기도 해요.

인류애적인 사랑을 모성애라고도 하죠. 그런데 모성애와 자기애가 부딪힐 때가 종종 있지 않아요?
모유수유 때문에 가슴이 처지는 걸 걱정하거나, 일과 육아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라든가.
아직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현대의 모성애는 무조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엄마도 꿈을 꾸고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게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전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무엇이든 무리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잠시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괜찮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임신은 매섭게 세워놓았던 날을 내려놓게 해주었어요. 남편에게도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죠.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일할 땐 그런 날 선 감각이나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보니 부드러워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웃음)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모델이니까요.
지금까지 예민하게 몸을 체크해왔기 때문에 작은 변화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몸이 확확 변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죠.
커지고 늘어진 가슴, 상상조차 못했던 배와 허리 곡선은 낯설고 신선해요. 내 몸이 이렇게도 변화할 수 있구나 경이로울 정도죠.
그런데 예전처럼 완벽하게 관리된 몸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어요. 왜냐하면 출산 후의 몸이 더욱 기대되거든요.

출산 후의 몸이 기대된다니 놀라워요. 모두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요.
20대와 30대의 몸이 달랐던 것처럼 출산 후도 출산 전과는 분명히 다를 거예요. 20대는 깡말랐었지만 탄력 있었죠. 팔다리가 정말 가늘었어요.
그때도 가슴과 엉덩이의 굴곡이 확실한 몸이었지만 완연한 여자의 몸은 아니었죠. 그때는 선배들의 큰 골반을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30대가 되니 풍만하고 여성스러운 몸으로 변했죠. 20대보다 탄력은 없었지만 가슴과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이 더욱 또렷해졌어요.
운동으로 보다 콜라병 같은 몸을 디자인할 수 있었죠. 몸은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녀요.
출산 후의 몸은 더 예뻐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출산 후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자의 곡선을 살아 있고 적당히 살집도 있지만 군살은 없고 다부지게 근육이 잡힌 여유 있는 몸이요.
오랫동안 요가나 필라테스를 한 사람들의 몸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쉬워요. 건강하고 단단한 볼륨이 아름다운 몸이죠.

지난 번 <얼루어>와의 웨딩 화보 인터뷰에서 영원히 여자 장윤주로 남고 싶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나요?
여자로서 아름답고 싶은 것은 모든 여자의 본능이죠. 여자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대중들애개 아름다운 여자이고 싶기보다는 남편한테만은 여자로 보이고 싶은 데에서 출발하죠.
그렇다고 아침마다 다른 향수를 뿌리고 섹시한 속옷을 입고 성형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부부는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인지 알아가고 삶의 방향을 확인하죠.
저는 기본에 충실하고 사랑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편은 그런 꿈을 지닌 나의 모습을 사랑하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정의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번 만삭 화보를 통해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요?
그동안 보아왔던 여신 같고 단아한 만삭의 모습이 아니라 모델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신한 몸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고정된 여자의 몸에 대한 도전이죠.
모델의 일은 신체를 통해 내면의 것들을 표현하는 일인데, 이전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역의 기록을 남긴 것 같아요.
결과물을 보니 억지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델 장윤주답게 담백하게 나온 것 같아 좋아요.

앨범, 라디오, 방송, 영화까지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을 해왔어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돌이켜보면 20대에는 두려운 게 많았어요.
보다 당당하게 도전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반짝반짝한 것들이 있거든요.
반면에 서른 살부터 지금까지는 앨범도 두 장이나 냈고, 3년간 라디오 DJ를 하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죠.
방송과 영화 <베테랑>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모델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린 시기였죠.
지금은 그 시기가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앞으로 제3의 챕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죠?

그 제3의 챕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전처럼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올해가 모델 일을 시작한 지 20주년의 되는 해예요. 20년의 시간을 잘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 해 전부터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어요.
대단한 자서전이나 사진집은 아니고, 어떤 형태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20주년을 기념하는 결과물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요.

<Allure> Jan.

  • 에디터 | 남지현
  • 스타일리스트 | 곽지아
  • 헤어 | 백흥권
  • 메이크업 | 고원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