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GUE

Yoon Ju

동양적 선과 한국의 색채로 응축된 서울 여자, 장윤주. 사진가 어윈 올라프의 뷰파인더 앞에서 장윤주가 20년 모델 이력을 재창조한다.그리고 배우 유아인이 그녀와 4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일하는 여자 사람 장윤주

5:5로 단정히 빗은 머리 위로 솟구친 기타 가방이 이색적 그림을 만든다. 합정동 뒷골목이 아니라 경리단 꼭대기의 내 집 비디오폰 디스플레이에
펼쳐진 풍경이니 더 그럴 수밖에. 경계를 풀지 않았던 직장 동료, 수없이 만나면서도 둘이서 커피 한 잔 나눈 적 없던 동료 배우가 내 집 초인종을 누른 것은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다. 등에는 기타 가방을, 한 손에는 일용할 양식을, 또 한 손에는 선물 박스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와 그녀가 내 집의 경계를 넘었다.
그렇게 그녀와 4시간을 함께했다. 기도하고, 먹고, 이야기하고, 기타 치고, 노래하고, 정원에 나가 이 맛이 그리웠다며 담배 한 대를 알뜰하게 피운 뒤
그녀는 떠났다.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정성스럽게 다 풀어놓은 채.

장윤주와 앉았던 식탁 옆에는 그녀가 선물한 일러스트레이터 나난의 ‘롱롱타임 플라워’와 사람 ‘장윤주’에 대한 기억이 반듯하게 놓였다.
몇 해 전,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며 알게 된 그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패션모델이자 앨범 두 장을 발매한 뮤지션이다.
방송 활동도 활발했다. 굵직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입담과 두려움 없는 슬랩스틱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고,
그녀가 진행한 TV 쇼는 톱 모델로 성장한 수많은 신인 모델을 배출했다. 또 5년간 그 쇼를 진행했고, 그중 2년은 자정 시간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겸했다.
커튼이 없던 풍납동 옥탑방 출신의 아침형 인간인 장윤주는 그 많은 일과 일 사이를 제멋대로 오가며 ‘일’했다. 그리고 성취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질문만이 답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이란 것의 가장 아름다운 형태가 ‘도전’이라는 것 역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드러내면서도
결국 후자에 응답한 그녀의 모든 도전은 결과와 수치에 목매는 세상의 천박한 척도를 벗어나 그 자체로 위대한 성취로 다가왔다.
“일을, 그것도 새로운 일을 계속한다는 건 그만큼 연속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는 거야. 하든지, 말든지.
모든 선택의 순간이 다 감사해서 기꺼이 그 많은 일을 해온 건 아니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며 그 일에 내 영혼을 쏟아 부을 수 있었던 건
그럼에도 즐길 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지. 잠깐의 행복, 그 찰나를 향해서 가는 거야.”

2016년 여름. 장윤주는 지난 20년간 기꺼이 그리고 기똥차게 감당한 일을 잠시 접어두고 강제 칩거에 들어갔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절대적 시간’을 통해 그녀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전에 없던 위업을 이루고야 말았다.“15kg이 쪘어.
다른 엄마들은 육아가 너무 힘드니까 아이가 배에 있을 때가가장 편하다고 하던데 나는 리사를 낳고 나서 더 편해졌어. 몸이 가벼워지니까.”
몸이 가벼운 장윤주가 일을 쉬는 순간은 없었다. 물론 임신 전에는 몸이무거웠던 적도 없을 것이다. 아이를 가진 몸.
장윤주는 일을 하지 않았던 그 1년 남짓한 시간을 ‘절대적 시간’이라고 정의했다. 일을 할 수 없는 시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어떠한 선택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 ‘집안일’의 시간을 지나 가뿐한 몸을 되찾은 그녀는 ‘바깥일’을 향해 다시 세상으로,
타인에게로 향한다. ‘절대적 이유’라는 게 없다면 살아 있는 한 그녀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무모한 포부로 가득 찬 청춘의 결기 같은 것으로
포장하는 일 없이 그녀는 ‘삽질’을 어설픈 팬터마임으로 모사하며 ‘일’하는 자신의 모양새와 의지를 유쾌하게 드러낸다.

솔직함과 유쾌함은 주제를 널뛰기하며 마구 뱉어내는 말의 어색한 행간을 단단하게 채워주고 대화 상대의 심각함을 박살 내는 그녀의 강력한 무기다.
“귀족 출신 모델 스텔라 테넌트처럼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나는 그런 귀티가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도들고…”
장윤주와 나는 귀티, 부티, 빈티 같은 단어를 콤보로 연발하고는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물었던 참이다.
일의 숭고함을 환기하는 그녀지만 그런 투정쯤은 일로 먹고사는, 더럽고 치사해도 기필코 살아가야 하는 모두가 하는 것들이지 않은가.
필연적인 투정의 여부가 궁금한 게 아니라 내 못난 구석에서 일과 타인에 대한 그녀의 인정과 애정이 부러웠다.
배가 아파서 물었다. 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모델 일을 20년 하는 동안 10년 정도의 시간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생각을 계속했던 것 같아. 나라는 사람을 계속 포장하며 사는 게 힘들었어.
명품을 몸에 휘감고 그걸 더 잘 보여주는 승부를 펼치는 게 내 일인데, 사실 난 그렇게 럭셔리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고작 풍납동 옥탑방 출신이잖아.
계속 ‘척’해야 하는 삶에 부대끼고 자신감도 없었어. 귀족 출신 모델 스텔라 테넌트처럼 가만히 있어도 귀티가 줄줄 흐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나는. 나는 그런 귀티가 없는 사람인가, 자괴감도 들고.”

자괴감은 과하고 괴리감에 가까울 것이다. 가만히 두었으면 괜찮았을 소외당한 세계. 20년간 그녀를 따라다닌 스포트라이트도
그녀의 영혼까지 비추지는 못했다. 럭셔리 아이템도, 사람들의 박수와 인정도 그녀의 영혼을 살찌우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일을 해야만 했던 게 아닐까.
“보디(Body)가 전부는 아니야!” “보디로만 평가해서는 안 돼!” 장윤주는 대화 내내 그 말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것으로 평가받고 사랑받은 그녀에게는 그것이 한계이고 족쇄였으리라. 정신과 영혼의 자세가 곧 몸의 자세를 만들고 움직임이란 것 역시 그렇다지만
‘몸’으로 대변되는 모든 결과의 외형을 넘어 대중의 시선이 모델의 내면에까지 닿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2008년, 스물아홉 살에 첫 음반 을 내놓으며 몸의 이야기가 아닌 영혼의 이야기를 노래했다.
‘보디’를 향한 각광 속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내면의 세계를 직접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마저도 5년 가까운 시간을 고민한 결과였는데
거기에는 윤종신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모든 것에는 적기가 있다. 40대가 되면 기술적으로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20대의 이야기를 하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지금 할 수있는 건 지금 해라. 준비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인터뷰가 진행되기 몇 달 전 출산 후 흐트러진 몸을 수습하던 그녀는 자신의 복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왔다.
돈, 부기, 휴식, 불안, 대중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그녀는 초심으로 돌아가 꿈과 비전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고단한 삶을 살아 여기까지 왔는데 무슨 수로, 어째서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나는 그녀에게 현재에  집중하라고 했다. 거기에 지금의 초심이 있다고. 먼 훗날 돌이켜볼 만한 그 ‘초심’ 말이다.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매 순간,
우리는 초심을 일궈낼 기회를 날려버리고 지난날의 초심에 얽매이고 어쩌면 그 초심조차 잃어버린 채 지금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가.

장윤주는 모델이라는 일의 범위를 가능한 한 모든 방식을 통해 확장해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대중이 함께 성장시킨 ‘장윤주’라는 확장적인 모델을 가지고
현재의 순간에 와 있다. 그녀가 들려준 윤종신의 말을 더하자면 대중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순간 그 주체는 ‘구려지기’ 마련이다.
주장하거나 평가한다고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생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지 않은가.

그녀에 대한 단상

대한민국에서 ‘모델’을 대변하는 장윤주에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모델의 역할이란 무엇일지에 대해 물었다.
그 한계와 해법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그녀의 생각도 함께 물었다. “20대 때는 항상 ‘패션모델 장윤주’라고 나를 소개했어. 근데 지나고 보니
나는 말 그대로 수많은 것의 모델일 수 있겠더라고. 단어 그 자체로 ‘모델’ 말이야. ‘롤모델’같이 흔하지만 좋은 말도 있고, 모델하우스도 있고. 으하하하.
우리는 어쩌면 모두 타인에게 어떠한 모델일 수 있어. 음악의 형태, 그림의 형태, 건축의 형태 같은 것처럼 사람으로서의 형태
그리고 인생의 형태를 보여주는 모델. 나는 ‘사람 장윤주’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모델’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선량함을 가진 ‘모델’. 그게 타인에게 비전이 되고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잖아.
누군가 나를 통해 꿈꾸기도 하고. 뭐 꼭 오‘ 드리 헵번처럼 살겠어!’ 그런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우리의 대화가 지나고 난 그날 이후 몇 차례 첨언의 문자를 보내왔다. 욕심 많은 내가 기자들에게 그러는 것처럼. 그녀는 위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단단히 ‘쿨병’에 들어 어떤 위로에도 도무지 곁을 내주지 않던 나를 위로한 그녀의 노래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녀 스스로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관심’이라는 영광을 부여잡고 그 이면의 고통에 신음하는 일은 지금 당장 극단적으로는 내가 겪고 있는 일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누구라도 감당하고 있는 일이다. 자신을 ‘Showing’ 하는 것이 곧 일의 전부였던 패션모델로 10대의 이른 나이에 데뷔해 갖은 평가와 성취,
오해와 결핍의 삶을 살아온 그녀는 소외당한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상 속에서 ‘일’로써 가진 노력과 성취를 오롯이 제 것으로 사유화해 거들먹대지도 않을 것이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모델 장윤주의 ‘일’, 그 일이 만드는 영향력에 대한 그녀의 성찰은 그녀가 소화한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의상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

“일을 통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메시지를 전하는 삶이야.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자가 되고파. 내 삶을 통해. 오늘 네가 느낀 것처럼.”
편집된 이미지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관찰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더 이상 모델이나 연예인의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의 비약에 따라 욕망의 형태를 달리하는 인간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삶의 방식은 과거의 소셜라이징 형태를 완전히 밀어내고
모든 개개인을 무대 위로 끌어 올렸다. 집밖의 세상에서 관객에 머물렀던 제 삶의 모든 주인공들이 이제 저마다의 무대를 자신의 단편으로 패셔너블하게 채우고
관심과 애정을 부어줄 관객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이 순간, 소셜 미디어의 존폐를 따지거나 반기를 드는 것은 퍼거슨 할배로 족하다.

장윤주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현재의 시스템을 살아가는 우리를 선명하게 비춘다. 그녀는 온전히 타인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받아들이고 있다.
내 것과 네 것을 가리느라 시비가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끈끈하게 얽혀 있는지, 서로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지를 그녀는 안다.
책에서 배우거나 누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니다. ‘절대적 시간’을 가르쳐준 리사가 그런 것처럼,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이 그녀에게 남긴 흔적이다.
그녀는 그것을 번뜩이는 훈장으로 자랑질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에 대한 의문에 파묻혀 번뇌로 허송세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대신, 그 남들과 조금 다른 삶의 흔적이 남은 자신을 세상을 통해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닿은 피부와 피부, 시선과 시선의 저편에 무엇이 있을까.
그것과 가장 무관한 화려한 일로 세상에 이름을 남긴 장윤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삶의 자세다.
저마다의 장벽으로 담장을 이룬 세상에서 그 너머의 사연과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일. 내 집에 들어온 건 장윤주인데 내가 이만큼 장윤주의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이 일터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필연적 사건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일이다.
‘일하는 장윤주’ 그녀는 데뷔 20주년을 맞아 진행된 인터뷰(를 가장한 수다) 내내 화려했던 왕년의 기억을 늘어놓는 대신 담담하게
다음 20년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런웨이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따위를 상상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런 그림으로 장윤주를 기억한다. 그녀는 그 기억을 소중히 보듬을 것이나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경리단을 떠나기 전 자신의 목소리로 불러준 김광석의 노래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스며들고 있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을 향해.
꿈에 보았던 그곳으로. 그녀가 세상에 건넬 위로가, 여기에서 보아도 눈부시다.
그녀를 바라본 수많은 시선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나의 단상이 그녀를 조금 덜 외롭게 하기를! 그녀가 내게 건넨 위로처럼.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설렘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우리가 느끼며 바라본 하늘과 사람들. 힘겨운 날들도 있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VOGUE>. Aug.

  • 글_홍식 (a.k.a. 유아인)
  • 에디터_김미진, 남현지
  • 포토그래퍼_Erwin Olaf
  • 헤어 스타일리스트_한지선
  • 메이크업 아티스트_이지영
  • 세트 스타일리스트_최서윤(Da;rak)

ALLURE

Grace Beauty
장윤주의 아름다운 몸

장윤주가 또다시 <얼루어>의 뷰 파인더 앞에 섰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결혼 화보에 이어, 만삭의 몸으로 커버를 장식했다.
임신한 장윤주가 지닌 몸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녀의 삶 중에서 가장 여유롭고 평온한 시간을 함께 기록했다.

엄마가 되길 기다리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윤주는 예전보다 더 깊고 단단해졌다. 장윤주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뿜어내는 따뜻함.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남편을 향해선 담백한 존경을, 뱃속 아이에겐 대담한 용기를 내비쳤다.
장윤주는 일과 사랑 그리고 아이라는, 여자의 인생에서 소중하지만 조율하기 어려운 것들을 느긋한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안감을 떨쳐내고 균형 있는 삶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했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지금은 어떤 기분인가요?
아이에 대해 생각할 땐 언제나 두려움이 함께 떠올랐죠.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제 아이가 생기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더 큰 사랑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얼마 뒤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죠. 정말 신기한 일이었어요.
오랫동안 불규칙한 생활과 저체중을 유지해왔기에 아이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해요. 지금은 출산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바람이 있다면 모든 엄마가 그렇듯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거죠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 무엇을 하며 지내나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좋아하는 것들을 해요. 운동도 하고 피아노도 치고 붓글씨도 쓰고요. 아기에게 주는 선물로
1집에 수록된 ‘April’을 동요로 만들어보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의 일들을 기록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가 생일날 무엇을 했는지, 밥 딜런이 뮤지션으로는 이례적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든지, 지금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 같은 것들이죠.
소소하지만 아이가 나중에 당시의 시대를 읽을 수 있었으면 해요.

엄마가 된다는 것은 굉장한 변화죠. 어떤 변화가 있나요?
어릴 때부터 모델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일이 곧 삶이었죠. 일하면서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했어요.
내 상태, 내 감정,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했죠. 결혼한 후로는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껴요.
아이를 갖고 그 배려와 안정감이 더욱 견고해졌죠. 그리고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어요.
나라가 혼란스러워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되요. ‘내가 항상 깨어 있어야겠구나!’ 깨닫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을 걱정하고 배려하게 되는 거예요.
아이를 기다리는 지금은 주변을 돌아보는 삶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기도 해요.

인류애적인 사랑을 모성애라고도 하죠. 그런데 모성애와 자기애가 부딪힐 때가 종종 있지 않아요?
모유수유 때문에 가슴이 처지는 걸 걱정하거나, 일과 육아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라든가.
아직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현대의 모성애는 무조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엄마도 꿈을 꾸고 비전이 있어야 하고, 그게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어요.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전혀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무엇이든 무리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잠시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 해도,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면 괜찮다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어요.
임신은 매섭게 세워놓았던 날을 내려놓게 해주었어요. 남편에게도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죠.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었고, 일할 땐 그런 날 선 감각이나 고집이 필요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보니 부드러워지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호르몬 때문일 수도 있지만요.(웃음)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모델이니까요.
지금까지 예민하게 몸을 체크해왔기 때문에 작은 변화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몸이 확확 변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죠.
커지고 늘어진 가슴, 상상조차 못했던 배와 허리 곡선은 낯설고 신선해요. 내 몸이 이렇게도 변화할 수 있구나 경이로울 정도죠.
그런데 예전처럼 완벽하게 관리된 몸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없어요. 왜냐하면 출산 후의 몸이 더욱 기대되거든요.

출산 후의 몸이 기대된다니 놀라워요. 모두들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요.
20대와 30대의 몸이 달랐던 것처럼 출산 후도 출산 전과는 분명히 다를 거예요. 20대는 깡말랐었지만 탄력 있었죠. 팔다리가 정말 가늘었어요.
그때도 가슴과 엉덩이의 굴곡이 확실한 몸이었지만 완연한 여자의 몸은 아니었죠. 그때는 선배들의 큰 골반을 부러워했어요.
그런데 30대가 되니 풍만하고 여성스러운 몸으로 변했죠. 20대보다 탄력은 없었지만 가슴과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이 더욱 또렷해졌어요.
운동으로 보다 콜라병 같은 몸을 디자인할 수 있었죠. 몸은 세월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녀요.
출산 후의 몸은 더 예뻐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출산 후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
여자의 곡선을 살아 있고 적당히 살집도 있지만 군살은 없고 다부지게 근육이 잡힌 여유 있는 몸이요.
오랫동안 요가나 필라테스를 한 사람들의 몸을 떠올리면 상상하기 쉬워요. 건강하고 단단한 볼륨이 아름다운 몸이죠.

지난 번 <얼루어>와의 웨딩 화보 인터뷰에서 영원히 여자 장윤주로 남고 싶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나요?
여자로서 아름답고 싶은 것은 모든 여자의 본능이죠. 여자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예요.
대중들애개 아름다운 여자이고 싶기보다는 남편한테만은 여자로 보이고 싶은 데에서 출발하죠.
그렇다고 아침마다 다른 향수를 뿌리고 섹시한 속옷을 입고 성형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부부는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소소한 감정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그런 과정에서 우리는 누구인지 알아가고 삶의 방향을 확인하죠.
저는 기본에 충실하고 사랑을 담은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남편은 그런 꿈을 지닌 나의 모습을 사랑하죠.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정의되어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번 만삭 화보를 통해선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가요?
그동안 보아왔던 여신 같고 단아한 만삭의 모습이 아니라 모델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임신한 몸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해요.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고정된 여자의 몸에 대한 도전이죠.
모델의 일은 신체를 통해 내면의 것들을 표현하는 일인데, 이전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새로운 영역의 기록을 남긴 것 같아요.
결과물을 보니 억지로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델 장윤주답게 담백하게 나온 것 같아 좋아요.

앨범, 라디오, 방송, 영화까지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으로 도전을 해왔어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어서 감사하죠. 돌이켜보면 20대에는 두려운 게 많았어요.
보다 당당하게 도전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반짝반짝한 것들이 있거든요.
반면에 서른 살부터 지금까지는 앨범도 두 장이나 냈고, 3년간 라디오 DJ를 하면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죠.
방송과 영화 <베테랑>으로 대중적인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모델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누린 시기였죠.
지금은 그 시기가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앞으로 제3의 챕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죠?

그 제3의 챕터는 어떤 모습일까요?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 전처럼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요.
올해가 모델 일을 시작한 지 20주년의 되는 해예요. 20년의 시간을 잘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 해 전부터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있어요.
대단한 자서전이나 사진집은 아니고, 어떤 형태일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20주년을 기념하는 결과물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요.

<Allure> Jan.

  • 에디터 | 남지현
  • 스타일리스트 | 곽지아
  • 헤어 | 백흥권
  • 메이크업 | 고원혜

LISA

LISA


여자 장윤주.

라디오 DJ와 작가로 처음 만나던 날, 물었다.
“장윤주를 대표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녀는 대답했다. “여자요.”

30년을 넘게 아름다운 여자로 살아왔으면서 새삼 여자라니. 실제로 그녀의 메신저에는 한동안 ‘여자 장윤주’라고 써 있었다. 
처음엔 그 대답이 의아했으나 같이 일하는 시간이 1년이 되고2년이 되는 동안 이해했다. 
오래 ‘일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점점 더 강해져야만 했던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품게 되는 바람을 그녀도 품은 것이다.

그녀는 ‘위로자’가 되길 바랐다. 만났을 때, 헤어질 때 항상 긴 팔을 넓게 펼치며 우리를 안아주었다. 
오래 ‘품는 사람’으로 살아온 듯했고 그 일에 소명을 느끼는 듯도 했지만 새벽 1시간 넘은 깊은 밤 라디오, 
“제가 안아 드릴게요”라고 하더니 한숨을 쉬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저는 누가 안아주죠.”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그녀도 깊게 안기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강하게 키워온 장윤주 저 안쪽에 담긴 여린 영혼을 한 사람에게만은 안심하고 기대어 쉬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에 많은 여자들이 바라는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호 받으며 살고 싶어서 그녀는 자신을 ‘여자 장윤주’라고 했던 것일까.

나는 여리고 섬세한 장윤주를 만났다. 사랑스러웠다. 분명 여자였다.

나는 품이 넓은 장윤주에게 종종 안겼다. 그 품은 어김없이 포근하여 가녀린 그녀였지만 대자연 어머니의 풍요를 느꼈다.
그 또한 분명 여자였다.

바라건대 그 모두를 통째로 안아줄 한 사람을 그녀가 만나기를 바랐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그녀가 건네준 청첩장에는 ‘Two are better than one’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마웠다. 둘이 하나보다 나을 사람을 찾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고독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청첩장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처럼 자란 딸 장윤주 / 딸처럼 자란 아들 정승민’

메신저에도 ‘여자 장윤주’ 대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심이 됐다. 그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어줄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느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굳이 여자임을 강조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장윤주면 된다고 청첩장의 글귀와 그녀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리사가 태어나던 날.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서른 시간동안 진통을 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수술을 해야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다운 메시지라 웃음이 났다.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리사를 안고 감격해서 울고 있을 여자 장윤주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는 서른 시간의 고통을 금방 잊을 것이다. 리사가 그녀를 닮았다면 자꾸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어할테니까.

봄과 여름 사이. 그녀가 내가 하는 서점으로 놀러왔다. 같이 공원을 걷고 차를 마셨다. 
늘 일상이던 산책과 차 한 잔이 몇 달 사이 특별한 일이 되었다며 그녀는 웃었다. 
그리곤 엄마가 된 행복과 더불어 엄마가 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도 들려주었다. 
아이를 낳고 무대에 서는 모델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윤주가 했던 말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자연스러워요?’라는 질문이었어. 선택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윤주의 기준은 ‘자연스러운가’였지.
마치 자연스럽다는 것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고 할까?
글을 쓰는 일이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요즘은 나도 같은 질문을 해. 그게 내가 장윤주에게 배운 가장 멋진 것이지.
모든 일에 처음이 있는 법이잖아. 장윤주가 그 처음이 되면 될 것 같은데?
윤주는 아주 많은 여성들에게 도전의 아이콘이었는 걸. 계속 무대에 서고, 계속 음악을 만들면 좋겠어.
나이 들고 엄마가 되면서 더 풍성해진 윤주를 우리는 분명 좋아할 거고 장윤주는 더욱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거야.”

그녀는 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고 떠났다. 길고 곧은 두 팔이 꼭 새의 날개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fly away>가 떠오르는 곡 하나를 보내왔다. <파리에 부친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감성은 여전했지만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의 오늘을 자연스럽게 노래했다.

이 앨범은 엄마 테마와 리사 테마로 나뉘어 있다. 

엄마 테마 <영원함을 꿈꾼다>는 장윤주가 직접 피아노 연주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꿈을 꾸는 존재로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이 깊으면 ‘부족한 나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사랑한다’고도 말하게 된다. 
장윤주는 이미 근사한 사람이지만 아이를 사랑하여 ‘부족하고 미안하다’ 노래한다. 
한편으론 ‘여전히 꿈이 많아 나를 찾아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솔직하게 담았다. 그녀의 솔직함을 안아주고 싶다.

부족한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있어 새로운 내가 되었다고 
그녀는 스스로 피아노 치며 노래한다. 목소리는 설레고, 선율은 다정하다.

리사 테마 <LISA>는 평소 그녀가 좋아하는 주윤하가 편곡을 맡았고 아코디언은 하림, 클라리넷은 손성제와 함께 작업했다. 
얼핏 <파리에 부친 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리사 곁의 장윤주는 먼 세상을 돌아 이제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은 사람처럼 즐겁다. 
그녀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깨끗하게 꿈꾸는 듯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좋았다. 들으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을 그녀를 상상했다. 
아기가 소녀가 되고 여인이 되고 오늘의 그녀만큼 나이가 들어도 그녀는 여전히 리사 앞에 앉아 딸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라디오 DJ를 할 때 그녀의 꿈은 위로자이며 ‘굿 리스너’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잘 듣는 사람, 장윤주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좋다. 그 자체로 깊은 위로다.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리사가 이해 받는 느낌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리사가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주는 장면을 그려본다.

– 작가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