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명실공히 <세자매>로 자리잡은 서로를 향한 안심과 평화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건 단지 박차를 가하기 위해 치는 박수라기보다 정확한 순간을 향한 찬사이자 웃으며 주고받는 호흡이었다.
“소리 언니, 지금 그 표정 너무 좋아.” “선영 언니, 지금 느낌 그대로.”
톱 모델 아니, 오늘은 배우이자 디렉터 역할로 촬영에 임한 장윤주의 사려 깊은 말이 문소리와 김선영의 사진에 조화롭게 포개졌다.
“제가 먼저 언니들에게 제안했거든요. 우리, 영화 개봉할 때가 되면 꼭 잡지 화보를 찍자고.”
문소리의 시크한 스타일과 김선영의 아방가르드 룩 그리고 장윤주의 포멀한 슈트 룩은 모두 그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패션적이면서도 영화 스틸 컷처럼 미장센이 돋보이게 구성하고 싶었어요.”
장윤주는 함께 출연한 두 배우를 향한 뜨거운 신뢰를 바탕으로 <데이즈드>에 화보를 제안했다.
“언니들은 제가 영화 출연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해요. 영화에서 제가 셋째 딸 역할인데,
첫째와 둘째가 김선영, 문소리 배우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랬거든요. 나, 이 영화 무조건 할래.”
지난 10월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가 나란히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 참석했다는 기사가 났다. 영화 <세자매>가 이룬 쾌거였다.
놀라운 건 <세자매>는 앞서 전주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되었다는 것. 한국을 대표하는 두 영화제에서 같은 국내 영화를 상영한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그만큼 <세자매>는 괄목할 만한 영화라는 뜻이다.
“부국제에서 처음 관객 입장으로 <세자매>를 봤는데, 펑펑 울었어요. 그러다 고개를 돌렸더니 선영이랑 윤주도 엉엉 울고 있지뭐예요.”(소리)
세 배우가 흘린 눈물의 명분은 추억 회상이 아니라 작품에 몰입한 감상의 산물이다.
“소리 언니가 우는 걸 보니 안심되더라고요. 우리 영화 잘 나왔구나, 하고.”(윤주)
그도 그럴 것이 문소리는 수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은 물론 2016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경쟁 부문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2017년에는 <여배우는 오늘도>라는 엄청나게 근사한 영화를 연출한 전방위 영화인이니까.
<세자매>는 세 자매의 삶이 곧 영화다. 먼저 첫째 희숙(김선영)은 꽃 가게를 운영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다. 엄마를 냉대하는 록 음악 마니아인 딸 보미(김가희),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남편(김의성)과 살며 큰 병까지 앓지만 내내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희숙은 숨 쉬는 것만 봐도 답답한 인물이죠.”(소리)
둘째 미연(문소리)은 대학교수 남편(조한철)과 번듯한 집에서 풍요로운 삶을 사는 듯하지만 졸렬한 남편은 외도를 하고,
다만 신앙을 따르는 교회 성가대 지휘자다. “어쩌면 자매 중 미연의 삶이 가장 피곤한지도 몰라요.”(윤주)
셋째 미옥(장윤주)은 소주병을 달고 산다. 남편의 애정 공세와 별개로 가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며, 잔뜩 취해 미연에게 전화로
추억을 묻는 게 취미다. “비유하자면 I don’t care. 미옥은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인물이죠.”(선영)
<세자매>는 행복한 가족을 위한 찬송가라기보다는 차라리 천연덕스럽게 처절한 삶을 그대로 담는 영화다.
“정말 환상의 조합이지 않아요?(일동 웃음)”(선영) 하지만 마냥 웃을 수 없는, 어쩌면 우리 이야기일지도.
“<세자매> 보셨죠? 어땠어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 <세자매>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한 문소리가 먼저 운을 뗐다.
“미연, 희숙, 미옥의 삶이 어쩜 그렇게 처절한가 싶다가도, 남 얘기가 아니구나 자각하다, 세 배우의 맹렬한 힘에 이끌려 이내 ‘탄탄한 영화는
이렇게 관객의 감정을 뒤흔들지’라는 생각에 멈췄어요.” <세자매>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가식덩어리, 소심덩어리, 골칫덩어리
세 자매가 말할 수 없던 기억의 매듭을 풀며 폭발하는 이야기’라는 시놉시스처럼 세 캐릭터가 극을 견인한다.
그만큼 세 배우의 연기가 몰입을 좌우하는 요소이며,
문소리와 장윤주, 김선영이 각자 맡은 캐릭터의 개성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열연은 관객을 흡인한다.
“<세자매> 같은 촬영장이 또 있을까 싶어요. 정말 특별했어요. 주연 배우 셋이 자기 촬영분이 없어도 현장에 매일 왔어요.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까지 늘 같이 있었죠.”(소리) 그는 프로듀서로서 늘 현장 모니터 앞을 지켰다고 했다.
그만큼 놀라운 건 작품에 임하는 세 배우의 유연한 태도였다.
“선영 언니가 현장에서 액팅 코치를 해줬어요. 연기를 전공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안 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언니를 신뢰했거든요.”(윤주)
이에 문소리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 분량 촬영이 끝나면 선영이에게 제 연기가 어땠는지 묻기도 했고, 선영이도 제게 그랬어요.
모든 면에서 유연한 촬영장이었죠”라는 설명을 더했다.
“감독은 큰 그림을 봐야 하니 배우들의 연기까지 세세히 볼 수 없잖아요. 저도 소리 언니와 윤주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죠. 서로 의견을 말하고
수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니까.”(선영) 김선영은 202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품에 안았고, 20년 가까이 브라운관과 스크린, 연극 무대를 오가는 명배우이자 6년째 함량 높은 극단 나베를 운영하며 액팅 코치까지 역임하는 베테랑이다.
또 <세자매> 촬영장의 유연함은 이승원 감독이라는 구심점 덕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이승원 감독님은 대화의 논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핵심만 받아들이는 분이에요. 디렉터로서 최고의 역량이죠”라는 문소리의 말에 앞서, 김선영의 “상대방의 진심을 받아들이는 힘이 있는 분이에요.
잔가지에 휩쓸리지 않죠”라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세자매>는 한국 사회의 통념에서 중년 여성의 모습을 미화하거나 평가 절하하지 않는다. 다만 세 자매 캐릭터를 송곳 삼아 폐부 같은 현실을
들춘다. 세 배우 또한 희숙, 미연, 미옥의 삶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매, 딸, 아내 그리고 엄마.
이런 사실로부터 영화와 세 배우의 삶을 나란히 두면 좀 다른 감상이 있을까?
“캐스팅이 확정된 후 저희 집에서 집들이 겸 단체로 모인 적 있어요. 모아놓고 보니 세 사람 모두 딸을 둔 엄마더라고요.”(소리)
“저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세 자매 중 막내로 자랐기 때문에 미옥을 연기할 수 있던 것 같아요.”(윤주)
“제게 엄마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제 어머니를 더 이해하는 시간이기도 해요.”(선영)
그리고 “행복한 삶요? 잘 모르겠어요. 행복이라는 말은 보통 어떤 기준에 의거해 쓰이는데, 그에 부합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잖아요.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각자 삶이 다르고, 알맞게 사는 거죠”라는 문소리의 말에는 마음을 포갰다.
마지막으로 세 배우에게 2021년에 바라는 게 있는지 물었다.
“다시 편한마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영화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상이 있잖아요.”(소리)
“<세자매>가 여러모로 잘됐으면 좋겠어요. 이승원 감독이 제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김선영은 이승원 감독과 세 번째 작품을 함께 했다.
“<세자매>를 기점으로 연기 활동에 대한 마음을 활짝 열게 됐어요. 그만큼이 영화에 참여한 모두가 평화롭고 단란하길 바라요.”
2021년 한국 영화계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힐 <세자매>는 1월 중 개봉한다.
–
<Dazed Korea> Jan.
- Creative Director | Kwak Jeeah
- Text | Yang Boyeon
- Photography | Mok Jungwook
- Hair | Jang Hyeyeon, Lee Hyejin
- Makeup | Lee Junsung, Jang So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