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짐은 이미 다 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가방 한 개 뿐.
혹시 빠뜨린 것은 없는지 찬찬히
가능한 한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너무나도 휑하고 낯설게만 보였다.
마음 한 곳이 저려오는 스산한 풍경이었다.
그 때 밖에서 누군가 불렀다.
이제 그만 출발하자는 소리 같았다.
그래, 가야지.
떠날 결심을 했으면 비워야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문을 나섰다.
등 뒤로 문이 잠겼음을 알리는
익숙한 신호음이 들려왔다.
다시는 이 문을 열고
들어갈 일이 없겠구나 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울컥해졌다.
이제 곧 이 문의 비밀번호도 바뀔 것이다.
이 방의 주인도 바뀔 것이다.
그래도 잊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것이 서툴렀지만
못지 않게 무모한 열정으로
뜨거웠던 청춘의 한 때.
여기 우리가 있었음을.
가끔 기억해줄까.
사랑만으로도 충분했던
마음이 가난하지 않던 시절.
그 그리운 나날들.
거기, 우리가 있었다고.
2014년 12월 30일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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