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자라난 장윤주
파리에서 만난 그녀는 더욱 유연하고 지혜로워졌다. 인생이란 영화에서 장윤주가 맡은 배역



“언제나 파리에 편지를 부치는 감성으로 살고 있는 듯해요.” 장윤주가 건넨 첫마디였다. 그녀는 7월 한 달 동안 파리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20대에 찾은 파리는 꿈과 사랑, 30대의 파리는 가족과 사랑, 지금의 파리는 삶과 사랑.
파리는 없던 낭만도 끄집어내는 곳 같아요. 좀더 느리고 털털해도 되고, 몸의 힘을 조금 풀어도 되고.”
홀로 서기를 위해 분투하던 지난 시절의 파리와 가족과 함께 찾은 파리는 느낌과 경험이 사뭇 다를 것이다.
“수없이 많은 날을 파리에서 보냈어요.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 각종 모델 세계대회, 오트쿠튀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전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아요.
혼자라는 자유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네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우리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싱글의 자유는 사라졌어도, 장윤주에겐 남편이라는 든든하고 편한 버팀목이 생겼다.

“남편은 맥가이버 같은 만능 해결사 느낌이 있어요. 내가 못하는 걸 다 해내는. 그리고 그 모든 일을 감당하고 즐기는 남자죠.
그런 사람과 함께한다는 게 참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해요.”
모델, 작가, 싱어송라이터, 방송인, 배우 등 지금까지 총천연색 커리어를 훌륭하게 소화해낸 그녀에게 '엄마’라는 역할은 여태껏 해온 어떤 일보다 어렵다.
“아직 서툴러요. 하지만 어떤 위기의 순간에 기꺼이 딸을 위해 죽을 수 있다는 강렬한 힘 같은 게 내 안을 꽉 채워요. 이런 게 모성애가 아닐까 생각하죠.”
그런 딸이 한 사람의 여자로 성장하다 보면 인생의 굴곡에서 사랑으로 아파하기도 하고 비전을 찾지 못해 막막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를 위해 그녀는 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려 한다. “전 엄마에게 모든 이야기를 다 했거든요. 우린 비밀이 없어요.
엄마는 내가 만난 모든 남자친구를 다 봤어요. 그 정도로 가장 깊은 친구고, 지금은 그 역할을 남편이 하고 있네요.
대화를 많이 나누는 부부예요.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옳고 유익하죠.” 현재 장윤주 부부가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파리에서의 좀더 긴 삶이다.

“서울이 아닌 파리에서 가족 모두 살고 싶어요. 의식주를 비롯해 아주 현실적인 것들을 하나하나 준비해보려고 해요. 그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생각의 노를 그쪽으로 젓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 장윤주가 우리에게서 사라질 일은 없어 보인다.
당장 9월부터 JTBC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 프로그램에 엠씨로 출연하기 때문이다.




“배우, 방송인, 가수, 모델 등 내가 즐길 수 있다면 계속 해나가고 싶고 오래 하고 싶어요. 내 안의 끼를 어쩌겠어요?
이미 타인의 시선을 즐기는 일을 하게 됐는데 굳이 멈추고 싶지 않아요. 지혜롭게 잘 헤쳐나가고 싶고, 지경을 넓혀가고 싶어요.
멋진 어른인 동시에 매력적인 사람이고 싶고, 섹시한 여자이고 싶어요. 말은 참 쉽지.”
그런 다양한 커리어를 쌓으려면 내 안의 끼만큼이나 좌절을 다루는 방법 역시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도전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실패에 매몰되지 않고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오는 회복력 말이다. “주눅이 들면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곤 해요. 감사할 게 이렇게나 많은데, 왜 만족하지 못하는지 생각해요.
그래도 자신감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냥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마음을 비우려 해요. 만족만큼이나 인정이란 게 참 어렵죠.
”나를 인정하는 게 어려운 만큼 타인을 인정하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장윤주에게도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었을까?
“예전에 어떤 사람에게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를 경험한 적이 있죠. 영화 [밀양]을 좋아하는데, 용서에 관한 내용이에요. 완전한 용서란 없는 것 같아요.
의지를 들여 용서하고 오히려 축복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이 지나 있고, 그렇게 자연스레 용서가 아닌 망각이 되어가는 게 아닌가 해요.”
내년에 그녀는 마흔이 된다. 지금이 장윤주의 인생 변곡선에서 어느 지점 같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새로운 시작이라 답했다.
“숫자가 바뀌어가는 그 시기에 늘 생각 과 고민이 많았어요. 그리고 어김없이 새로운 삶이 펼쳐졌죠. 나는 20대 때 내가 30대에 방송을 하게 될지 몰랐고.
영화를 찍게 될 것도 몰랐으며 결혼과 육아를 하게 될 지는 더더욱 몰랐죠. 40대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걱정보다 기대를 해봐요.”




그녀는 자신을 언급할 때 후회를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성장과 새로운 기회에 방점을 찍는다. 그것은 어쩌면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삶의 굴곡에서 비롯된 근성일 수도 있다. 이번 [싱글즈] 15주년호의 주제인 ‘What I Love About Me’를 물었다.
장윤주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사랑하는 단어는 무엇일까? “성장. 언제나 내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라난다고 느끼려 해요.
또 인생에서 마땅히 성장해야 할 책임감 같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거나 외면하지 않으려 해요.

40대인 지금도 나이가 들어간다기보다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장을 늦추고 싶거나 더 누리고 싶은 마음도 가끔은 있지만.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는 지금을 격려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축복해주고 싶어요.” 성장이란 단어는 그녀가 매일 딸에게 전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매일 밤 리사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줘요. 그 기도에는 이런 내용이 있어요. 31개월 된 이 시기에 성장해야 하는 것들을 축복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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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les> Sept. 

사진 김형식
에디터 김건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