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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주의 호우시절

모델로, DJ로, 배우로 지난해 종횡무진 질주했던 장윤주가 올해는 걸음을 조금 늦추기로 했단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은 듯한 그녀가 장윤주의 서른여섯, 호우시절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얼굴이 탄 것은 처음 본다.
아프리카에 갔다 왔다더니 그래서인가?

어떻게 가게 된 건지?
아프리카에 처음 관심을 갖고 생각했던 것이 벌써 2년 전이다.
만델라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인데 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영화 <인빅터스>밖에 없었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고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면서 한동안 되게 울컥했었다.
만약에 여행을 가게 되면 일단 남아공부터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이 어떤 나라인지 좀 궁금해졌다.
이번에 라디오를 그만두면서, 아니 그전부터 계속 생각했던 것인데 좀 더 넓어지고 싶었다.
넓어진다는 것이 유명해진다든가 하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나 생각, 가치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년 8월경부터 라디오를 그만두고 일단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그 시작이 만델라 대통령의 나라 남아공이었고 이어 전부터 너무 가보고 싶었던 탄자니아까지 생각하게 된 거다.

아무리 가고 싶어도 웬만한 용기가 있지 않고서는 힘들었을 것 같은데.
멀고 위험하기도 해서 혼자 갈 엄두가 안 났는데 교회에서 NGO 활동하는 분하고 함께하게 됐다.
3년 전에 아이티 봉사 갔을 때 인연을 맺었는데 NGO 하면서 일 년에 수도 없이 해외 봉사를 다니는 분이다.
그분한테 남아공에 너무 가보고 싶고 탄자니아까지 가보고 싶지만 혼자 갈 엄두는 안 난다고 하니
기꺼이 동행해주겠다고 하셔서 같이 갔다 왔다. 나는 일단 마음먹으면 바로 티켓 끊고, 숙소 정하고, 금방 떠나는 편이다.
준비도 수월했고, 별로 큰 걱정 안 했기 때문에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다.

평소 많이 가봤던 파리나 뉴욕 같은 대도시들은 서울이랑 별반 다를 게 없지 않나.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난 아프리카가 그렇게 좋았다.
가보고 느낀 건데 내 얼굴 생김새가 그들하고 많이 닮았더라. 특히 이 광대뼈 쪽이.(웃음)

예전에 아프리카에서 촬영한 화보를 본 것 같다. 처음은 아니지 않나?
아프리카를 처음 갔던 건 2000년도에 김중만 선생님, 조선희 작가와 화보 촬영을 갔을 때였는데,
그때도 아프리카라는 땅에 대해서 되게 충격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가 모 매거진의 창간호 특집 화보 촬영하러 케냐에 갔었다.
지금은 드문 일이 되었지만 어릴 때부터 화보 촬영 하러 오지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아프리카에 대한 두려움이나 흔히 걱정하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해 크게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한 달이나 되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선교사님 댁에 있다 보니 그 선교사님의 사역을 옆에서 거드는 정도?
남아공에서는 노숙자 사역을 하셔서 같이 예배 드리고, 이발해드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드릴 때 식사 나눠드리는 정도였다. 탄자니아에서는 지하수 개발하는 작업을 도왔다.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나?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다. 같이 동행했던 분이 10년 동안 탄자니아를 오갔지만
단 한 번도 지하수 물줄기가 터지는 순간을 본 적이 없었단다. 그런데 이번에 나와 방문했을 때 두 번이나 목격한 거다.
지하수 뚫는 작업은 3미터 길이의 파이프가 30개가 들어가야 되는 것으로 어마어마한 깊이를 뚫어야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뚫는다고 해서 다 나오는 것도 아니란다. 그런데 두 번이나 목격하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물이 터지는 걸 보니 눈물이 나오더라.

올해 좋은 일이 있을 건가 보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 물줄기가 터지는 걸 보고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 마음의 방이 더 늘어난 느낌, 여유가 생겼다. 결혼관에 대해서 닫혀 있던 마음도 좀 열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왜 닫혀 있었나? 단지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좋아서?
혼자가 편한 것도 있지만 ‘누군가 함께 평생을 산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불신이 있었다. 요즘은 주변에서 너무들 많이 이혼을 하니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있다.
또, 혼자인 게 익숙해지고 편해지면서 싱글 여성으로서 좋은 것들에 대해서 많이 경험을 하다 보니
굳이 내가 결혼을 지금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할 때에도 그렇게 부럽지 않았다.
근데 탄자니아에서 남아공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닫혀 있던 그 문이 열렸다.

비행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어떤 드라마인지 영화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문구였다.
‘Do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Do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알고 보니 그 메시지가 아프리카의 유명한 속담이라고 하더라.
중학생 영어 수준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너무나 쉬운 단어들이어서 그런지 더 가슴에 확 와닿더라.
탄자니아도 혼자였으면 못 왔겠지, 이들이 나와 함께 동행해줘서 갈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서울에서 계속 살게 될지 아니면 정말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혼자서 멀리 가기는 쉽지 않겠다,
함께 가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평생 함께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랑은 결혼할 수 있겠구나라는 도달점에 닿았다.
처음 여행 가기 전에 했던 생각부터 이런 결정까지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어떤 남자 스타일이 좋나?
성품이 먼저인 거 같다. 마음밭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면 신앙을 전도해도 더 잘 받아들일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뭐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이상형은 없어진 지 오래다. 이제는 정말 내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디오 그만두고 나서 한동안 허전하지 않았나?
꽤 오래했으니까. 한 2년 2개월, 연차로는 3년차 DJ였다.
나라는 사람이 사실 가족, 친구들 혹은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다였는데
라디오를 하면서 대중이 뭔지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말 가까이에서 그들의 일상과 소통하니까.
나는 연예인이나 패션계 쪽보다 평범한 삶을 사는 친구들이 많지만,
라디오를 진행하지 않았으면 모를 일반 대중과 메시지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라디오를 하면서 내가 되게 좋은 사람이 된 거 같았다. 그들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줄 수 있는 되게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예전에는 길을 다니면 “엇, 장윤주다” 하고 힐끗힐끗 쳐다보고 속삭이듯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언니!” 하고 대뜸 불러서 보면 모르는 사람이다.(웃음) 확실히 친근해진 느낌이다.
<무한도전>의 역할도 컸겠지만, 라디오를 통해 생긴 이미지가 있지 않았을까? 말 걸고 싶고,
말 걸어도 될 거 같은 이미지가 생긴 데에 참 감사한다.

또, 음악을 많이 알게 됐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 웬만한 음악은 이제 다 안다. 음악을 더 많이, 좀 더 심도 있게 들을 수밖에 없으니까.
매일 매일 하다 보면 나오는 것만 나오는 것 같고, 최근 나오는 음악들이 많기도 하다.
마지막 피디님은 음악평론가로도 유명한 정희섭 피디님이라고, <음악도시> 만드셨던 분인데 그분하고 같이 프로그램 하면서 많이 배웠다.

앨범을 또 낼 생각은 없나? 

2012년 11월에 2집이 나왔었는데 아마 음악 작업은 계속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정규 앨범을 꼭 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없어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업계에서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디지털 싱글은 노래를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작업은 꾸준히 하고는 있으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선보이게 될 거다.
음악에 대해서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만약에 아프리카 같은 데 가서 뭘 가르칠래 하면, 그냥 애들이랑 같이 노래하겠다고 할 거다.
내가 이론적인 것은 배운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서 애들이랑 같이 노래를 부르고 싶다.

라디오를 해서 그런가? 답변이 잘 정리가 되어 있다. 문장도 군더더기 없고.
라디오를 하면서 많이 훈련이 되긴 했다. 또, 라디오를 하면서 뮤지션 인터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인터뷰에 강해졌다.
뭐니뭐니해도 일반 청취자하고 통화하고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늘었다.
내가 제일 약한 게 내레이션이었는데 A4 두 장짜리 분량의 에세이를 매일 같이 2년 넘게 읽다 보니 그런 부족했던 부분도 늘더라.

현재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올해의 계획도 궁금하다.
여행을 많이 다니려고 한다. 이번 아프리카 함께 다녀온 팀과 함께 네팔에 갈 계획이다.
네팔에 이분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이 있다고 해서 봉사도 하고, 웃기지만 트레킹도 도전해보려고 한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크게, 멀리 움직이고 싶다. 그리고 지금 <SBS 스페셜>에서
여자의 가슴을 주제로 준비하고 있는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진행을 맡아서
미국과 영국에 취재차 촬영을 갈 예정이고 돌아오면 영화 홍보가 있다.

영화도 찍었나? 

<베테랑>이라고 류승완 감독 영화인데 여형사 역할이다. 5월 말에 개봉한다.
조연이라 신이 많지는 않은데 황정민, 오달수, 유해진, 유아인 중간에서 여자 홍일점이라 특별히 뭘 안 해도 좀 튄다.
이름도 봉윤주, 미스 봉인데 황정민 선배가 직접 오디션 캐스팅했고 연기 지도도 많이 해주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겠다 싶어서 도전해봤다.
아, 2017년이 내가 모델을 시작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아마 하반기부터 기록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어떤 작업을 통해 이것을 기념할지 계획을 세우는 데 주력할 것 같다

<Harper’s Bazaar> 3월호

  • Editor 곽새봄 
  • Photo 유영규
  • Hair 박정은(고원)
  • Makeup 고원혜(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