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장윤주.

라디오 DJ와 작가로 처음 만나던 날, 물었다. 
“장윤주를 대표하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그녀는 대답했다. “여자요.”

30년을 넘게 아름다운 여자로 살아왔으면서 새삼 여자라니. 실제로 그녀의 메신저에는 한동안 ‘여자 장윤주’라고 써 있었다.
처음엔 그 대답이 의아했으나 같이 일하는 시간이 1년이 되고2년이 되는 동안 이해했다.
오래 ‘일하는 사람’으로 살면서 점점 더 강해져야만 했던 여성이라면 한 번쯤은 품게 되는 바람을 그녀도 품은 것이다.

그녀는 ‘위로자’가 되길 바랐다. 만났을 때, 헤어질 때 항상 긴 팔을 넓게 펼치며 우리를 안아주었다.
오래 ‘품는 사람’으로 살아온 듯했고 그 일에 소명을 느끼는 듯도 했지만 새벽 1시간 넘은 깊은 밤 라디오,
“제가 안아 드릴게요”라고 하더니 한숨을 쉬며 그녀가 말했다. “그런데 저는 누가 안아주죠.”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큼은 그녀도 깊게 안기는 사람이고 싶었던 것이다. 

강하게 키워온 장윤주 저 안쪽에 담긴 여린 영혼을 한 사람에게만은 안심하고 기대어 쉬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에 많은 여자들이 바라는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호 받으며 살고 싶어서 그녀는 자신을 ‘여자 장윤주’라고 했던 것일까.

나는 여리고 섬세한 장윤주를 만났다. 사랑스러웠다. 분명 여자였다.

나는 품이 넓은 장윤주에게 종종 안겼다. 그 품은 어김없이 포근하여 가녀린 그녀였지만 대자연 어머니의 풍요를 느꼈다. 
그 또한 분명 여자였다.


바라건대 그 모두를 통째로 안아줄 한 사람을 그녀가 만나기를 바랐다. 
마침내 그 날이 왔다.

그녀가 건네준 청첩장에는 ‘Two are better than one’이라고 적혀 있었다.
고마웠다. 둘이 하나보다 나을 사람을 찾기 위해 그녀가 얼마나 고독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청첩장에는 이전에는 보지 못한 소개글이 적혀 있었다.
‘아들처럼 자란 딸 장윤주 / 딸처럼 자란 아들 정승민’ 

메신저에도 ‘여자 장윤주’ 대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적혀 있었다.
안심이 됐다. 그녀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어줄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느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굳이 여자임을 강조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장윤주면 된다고 청첩장의 글귀와 그녀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리사가 태어나던 날. 그녀에게 메시지가 왔다.
‘서른 시간동안 진통을 했다. 자연분만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수술을 해야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다운 메시지라 웃음이 났다. 힘들었다고 하면서도 리사를 안고 감격해서 울고 있을 여자 장윤주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마 그녀는 서른 시간의 고통을 금방 잊을 것이다. 리사가 그녀를 닮았다면 자꾸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어할테니까.



봄과 여름 사이. 그녀가 내가 하는 서점으로 놀러왔다. 같이 공원을 걷고 차를 마셨다.
늘 일상이던 산책과 차 한 잔이 몇 달 사이 특별한 일이 되었다며 그녀는 웃었다.
그리곤 엄마가 된 행복과 더불어 엄마가 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고민도 들려주었다.
아이를 낳고 무대에 서는 모델이 거의 없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윤주가 했던 말 중에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자연스러워요?’라는 질문이었어. 선택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윤주의 기준은 ‘자연스러운가’였지.
마치 자연스럽다는 것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선천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고 할까?
글을 쓰는 일이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요즘은 나도 같은 질문을 해. 그게 내가 장윤주에게 배운 가장 멋진 것이지.
모든 일에 처음이 있는 법이잖아. 장윤주가 그 처음이 되면 될 것 같은데?
윤주는 아주 많은 여성들에게 도전의 아이콘이었는 걸. 계속 무대에 서고, 계속 음악을 만들면 좋겠어.
나이 들고 엄마가 되면서 더 풍성해진 윤주를 우리는 분명 좋아할 거고 장윤주는 더욱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거야.”

그녀는 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주고 떠났다. 길고 곧은 두 팔이 꼭 새의 날개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뒤 <fly away>가 떠오르는 곡 하나를 보내왔다. <파리에 부친 편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감성은 여전했지만 다른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의 오늘을 자연스럽게 노래했다.



이 앨범은 엄마 테마와 리사 테마로 나뉘어 있다. 

엄마 테마 <영원함을 꿈꾼다>는 장윤주가 직접 피아노 연주에 참여했으며, 여전히 꿈을 꾸는 존재로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사랑이 깊으면 ‘부족한 나라서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다. ‘미안하지만 사랑한다’고도 말하게 된다.
장윤주는 이미 근사한 사람이지만 아이를 사랑하여 ‘부족하고 미안하다’ 노래한다.
한편으론 ‘여전히 꿈이 많아 나를 찾아 날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솔직하게 담았다. 그녀의 솔직함을 안아주고 싶다.

부족한 자신을 보며 웃어주는 아이가 있고, 그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이 있어 새로운 내가 되었다고
그녀는 스스로 피아노 치며 노래한다. 목소리는 설레고, 선율은 다정하다.

리사 테마 <LISA>는 평소 그녀가 좋아하는 주윤하가 편곡을 맡았고 아코디언은 하림, 클라리넷은 손성제와 함께 작업했다.
얼핏 <파리에 부친 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리사 곁의 장윤주는 먼 세상을 돌아 이제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은 사람처럼 즐겁다.
그녀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깨끗하게 꿈꾸는 듯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이 좋았다. 들으며 아이와 눈을 맞추고 있을 그녀를 상상했다.
아기가 소녀가 되고 여인이 되고 오늘의 그녀만큼 나이가 들어도 그녀는 여전히 리사 앞에 앉아 딸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라디오 DJ를 할 때 그녀의 꿈은 위로자이며 ‘굿 리스너’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잘 듣는 사람, 장윤주였다.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좋다. 그 자체로 깊은 위로다.
엄마와의 대화 속에서 리사가 이해 받는 느낌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리사가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아주는 장면을 그려본다.


- 작가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