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칼럼 2부. 
소녀,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장윤주입니다. 제 네이버 스타칼럼 1부 모델 편 잘 보셨나요?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번 2부에서는 제 음악과 방송 이야기를 들려드릴 텐데요,
장윤주의 두 번째 스타칼럼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부에서 이야기했듯이 초등학교 2학년, 저희 큰 언니의 도움으로 처음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했어요.
정규 교육이 아니라 집에서 언니에게 코드를 배운 거죠. 악보를 보면서 피아노를 치기보다는
A가 라, B가 시, C가 도 이런 식으로 언니가 치는 음을 듣고 따라 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음악은 자연스럽게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습니다.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드라마 OST를 연주해 주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고요.

이후 교회에서 음악에 제대로 눈을 뜨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성가대에서 활동 했었어요.
어린이 복음 성가 경연대회에 나가서 독창으로 은상도 받고 꽤 실력을 인정 받던 중,
중학교 1학년 때 성가대 지휘자 선생님의 악보를 보게 되면서 음악을 알게 됐습니다.
같은 노래라도 진행되는 코드의 변화로 사람의 마음까지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막연히 음악이 좋아 처음 CD가게에 가서 판매원의 권유로 듣게 됐던 것이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오 까를로스 조빔의 음악들이었습니다. 조금은 낯설면서도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았던 그 음악들을 테이프가
늘어 날 때까지 들었죠. 나이 보다 성숙한 음악들을 언니를 통해 들으면서 언젠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중학생 시절 모델 학원을 다니면서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항상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패션쇼 음악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국내외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러 가고 CD를 모으는 것이 가장 큰 취미가 됐습니다.
모델은 음악과 밀접한 직업이라 모델 일을 하면서 더 많은 음악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정원영 교수님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재형씨와 이적씨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 즈음에 토이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게 되면서 평소 팬이었던 유희열씨도 만났습니다.
제 안에 꿈틀대는 음악 이야기를 서슴없이 나누면서 대학교 때 만난 싱어송라이터 임주연 양에게 1년간 피아노를 배우게 됐습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파올로로베르시와 함께. 그는 1집 앨범 중 '파리에 부친 편지'를 좋아했다.
 

제 나이 23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만든 곡을 재형 오빠, 적이 오빠에게 들려주면
오빠들은 제 곡이 좋다고 칭찬해 줬습니다. 자신감을 얻어 2005년 여행 에세이 ‘CmKm’을 통해
저의 첫 작품인 ‘Fly Away’와 ‘Martini Rosso’라는 피아노 연주곡을 세상에 내 놓게 됐습니다.
즐겁게 시작한 음악이 생각 이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 당시 싸이월드 음악 차트에 인기 배경 음악에
꼽히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콘서트 때면 앙코르 곡으로 가수 장윤주를 존재하게 해 준 ‘Fly Away’를 부릅니다.

그 후 앨범을 정식으로 제작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제게 정원영 교수님은
‘윤주야 아마 시간이 더 지나도 준비가 되지는 않을 거야. 그 준비란 계속해야 하는 거란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재형 오빠 역시 ‘지금 나이에만 할 수 있는 가사와 음악이 있단다. 지금의 때를 놓치고 나이가 들면
지금의 노래를 하지 못해’라고 조언해 줬습니다.

특히 언젠가 제 피아노 선생님이었던 임주연 양의 공연에 게스트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어요. 전 ‘Fly Away’와
그 당시 미공개 곡이었던 ‘April’을 불렀는데요. 그때 적이 오빠가 ‘가사도 멜로디도 참 아름답다’며 자신감 없던 제게 큰 힘을 줬습니다.

그렇게 모델 활동을 하면서 1집 앨범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앨범 작업에 한창이던 2008년 봄,
재형 오빠의 3집 앨범 중 ‘지붕 위에 고양이’를 함께 부르게 됐습니다. 제 1집 앨범이 나오기 전, 오빠와 함께
공연도 하고 방송 출연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대중들에게 더 많이 알리게 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재형 오빠의 3집 앨범 중 '지붕 위에 고양이'를 피처링해 방송과 공연을 함께 다녔다.
오빠는 저 때나 지금이나 역시 패셔니스타 뮤지션.
 

그 후 2008년 11월에 저의 1집 앨범 ‘Dream’이 발매 됐습니다. 제가 전곡을 작사, 작곡했는데요.
처음에는 곡을 다른 뮤지션에게 받을까도 생각했었지만 크게 반응은 얻지 못하더라도 제 곡들로만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모델인 제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크고 작은 공연을 다니면서 만난 낯선 음악 무대는 런웨이와는 또 달랐습니다.
처음엔 ‘네가 하면 얼마나 하겠니’라는 시선과 ‘와! 모델 장윤주다’라는 반응으로 무대가 좀처럼 편하지 않았어요.
사실 모델은 무대에서 관객과 직접 눈을 맞추며 친근하게 이야기를 하지는 않거든요.
내 속 이야기를 음악으로 나눈다는 게 어색해 마치 대중 앞에서 발가벗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그리고 다들 모델이 음악을 한다고 하면 강렬한 록이나 힙합, 일레트로닉 음악을 상상하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어쿠스틱한 기타 사운드에 일기장을 써 내려가듯 감성적인 음악이어서 많은 분들이 더 의아해 하셨던 것 같아요.
누군가 이야기 했듯 제 음악은 모델의 진한 메이크업을 지운, 자극 없는 건조한 크래커 같았거든요.



1집은 스프레드 콘셉트였다. 마치 갤러리를 보는 듯한 앨범 재킷을 만들었다.
작가 사이다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연광에 비췄다. 나는 꿈을 꾸듯 눈을 감았다.
 
 
그 후 2집 앨범 발매의 대한 생각은 반반이었습니다. 당장에 바로 음악을 계속 이어간다는 게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멀티샵에 들렀다가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를 멀리서 보게 됐습니다. 앞서 한번
‘무한도전’의 섭외가 있었으나 예능은 모델인 제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절했습니다.
그때 멀리서 김태호 피디를 보면서 ‘만약에 모델로 섭외가 온다면, 나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지어낸 이야기처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무한도전’에서 ‘도전! 달력 모델’이라는 콘셉트로 섭외가 들어왔고
저는 ‘이런 콘셉트라면 한번쯤 예능에 출연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무도사랑’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늘 멋지고 신비로운 모델의 모습에서 ‘친근하고 유쾌한 장윤주’를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리게 된 것이죠.

또 같은 해 ‘무릎팍도사’에 출연하게 되면서 대중들에게 모델 장윤주의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이어서 음악을 하는 오빠들인 이적, 정재형, 루시드 폴, 장기하씨와 함께 ‘놀러와’에 출연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제 음악 이야기도 들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그리고 2010년 6월호 보그 콜라보레이션 사진.

'무릎팍도사' 최초의 모델 손님으로 즐겁고 유쾌한 나의 이야기를 나눴다.

2011년 1월호 '장윤주와 친구들' 퍼펙트 매치 화보 촬영장에서 적이오빠, 기하와 함께


이 글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작은 소망들이 모이고 모여 현실로 이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늘 저의 신조처럼 지금도 그렇듯 저는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 그 어떤 일들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바쁜 스케줄에 지칠 때면 어김없이 홀로 음악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앨범의 대한 생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마음으로 1년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이번 2집 앨범의 프로듀서인 푸디토리움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렇게 지난해 11월, 4년 만에 저의 2집 앨범이 나오게 된 거죠.

1집이 소녀의 멜로디였다면 2집은 여자가 된 저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모델이나 예능인이 아닌 그냥 ‘여자 장윤주’의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서른이 지난 어느 날 길을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제 여자구나. 저 나무, 가로등과 잠시 스친 남자에게도 나는 이제 여자구나.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것이 이번 2집 앨범입니다. 앨범 타이틀인 ‘I’m fine, 나는 괜찮아’는
‘나는 잘 지내.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 그 어떠한들 나는 지금의 내가 좋아’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2집 단독 콘서트 '아는 여자' 포스터. 이번 2집의 컬러는 베이지브라운이다.
소녀에서 여자로 그 의미를 컬러로 담아보았다. 그리고 아래는 앨범 커버. 거울에 비친 또 다른 나를 바라보는 콘셉트.
보이는 것은 두 명이지만 결국 하나라는 의미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직업이지만 저도 여느 다른 여자들과 같이 단 한 사람의 사랑만을 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습니다. 1집 때와는 다르게 다소 우울하고 더 간결해진 음악.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들을 표현했습니다. 그게 지금의 ‘장윤주’니까요.

얼마 전에는 저의 2집 단독 공연 ‘아는 여자의 몰랐던 이야기’도 서울과 부산에서 무사히 잘 마쳤고.
1집 때와는 다르게 노래하는 무대가 훨씬 더 편해진 저를 보게 됐습니다. 대중들과 더 가까워지면서
톱모델이라는 수식어 보단 그냥 여자 장윤주로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게스트로 정재형씨, 이적씨, 토마스 쿡, 푸디토리움이 무대를 빛내 주셨어요.
정말 그분들 덕분에 그리고 저를 사랑해 주고 음악을 기다려 준 팬 분들 덕분에 공연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단 3일만에 서울 3일, 부산 1일의 공연 티켓이 모두 다 판매됐습니다. 정말 설레고도 떨렸던 콘서트 첫 날, 
저의 사랑 ‘무한도전’에서 보내온 ‘I’m a Big Fan of Yours’라는 멘트가 적힌 화환을 보면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깨알영어로 나를 웃음짓게 했던 감동의 화환. 덕분에 서울 공연 3일 내내 힘이 났다. 사랑해요. 무한도전.
 

공연이 다 끝나고 토마스 쿡 오빠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공연을 다 보고나니 장윤주의 음악에는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너의 음악을 펼쳐 나가렴.’ 정말 힘이 되고 감동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공연에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요즘 저는 작년 앨범이 나올 때쯤 시작한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의 DJ를 맡고 있는데요.
그것 역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라디오가 좋습니다. 매일 밤 자정, 청취자를 만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사실 제가 ‘아침형 인간’이라 예전이라면 라디오를 진행하는 시간에는 자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활 패턴을 바꾸고 여러분과 라디오를 통해 만나고, 음악을 듣고 있어요.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옥탑방 지기, 주디’가 되고 싶어 감내하고 있답니다. 생동감 넘치는 하루하루가 되고 있는 거죠.

그러고 보니 지금은 이렇게 제 목소리로 여러분을 만나고 있네요. 아직은 부족하고 낯설 수 있지만
제 목소리가 따뜻한 휴식과 힘이 돼 여러분께 위로를 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장윤주’의 꿈을 여러분과 함께 이뤄가고 싶습니다. 욕심이 아닌 소망과 평안함으로 그렇게, 지금처럼 앞으로도요.
여러분의 모델로서 음악도 진행하는 모습도 사랑으로 지켜봐 주세요.


지금까지 장윤주의 스타칼럼이었습니다. 2편으로 나눠진 이번 칼럼이 여러분에게 사랑과 꿈을 드리는 글이 됐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또 만나요!



글 장윤주
사진 장윤주, 보그, 김효범 작가(로드스튜디오)
편집 황용희 국장 (이슈데일리)